[나의 소장품] 윤춘기 대우루컴즈 사장

[나의 소장품] 윤춘기 대우루컴즈 사장

 나의 옷장 안엔 20년도 훌쩍 넘은 세월의 셔츠 한 벌이 있다.

 20년의 시간이 말해주듯 이제는 작아진 목둘레와 다소 구식인 디자인, 낡은 질감으로 입을 수 없는 셔츠지만 이사를 하든 옷정리를 하든 언제나 옷장 속에 자리 매김을 하는 친구다.

 1980년대 대우에 처음 입사한 사회초년생인 날 위해 아내는 감색양복과 옅은 블루빛의 셔츠 한 벌을 선물해줬다. 아내 덕분에 입사동기 중 가장 말쑥한 모습으로 첫 테이프를 끊을 수 있었던 나는 햇병아리 사원이 임원급이나 입을 법한 양복을 입었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참 열심히 일했던 것 같다.

 나를 믿어주고 자랑스럽게 여기던 아내의 정성이 고마워서였는지도 모른다. 그 당시부터 현재까지, 일본지사로 발령받은 3년여의 시간을 제외한 매일 아침 아내는 언제나 출근길엔 옷가지를 챙겨준다.

 단벌 신사 사회초년생일 수밖에 없었던 당시와는 다르게 이젠 여러 벌의 고급 양복을 가지고 있지만 아내와 나는 아직도 가끔 옷장 속 허름한 셔츠를 보며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매일 밤 늦게 퇴근한 날 위해 아내는 손빨래를 하며 부리나케 셔츠를 말려서 다음날 출근길에 입히곤 했었다.

 여분의 셔츠가 한두 벌 더 있었음에도 아내가 선물한 양복엔 그 셔츠를 입어야 힘이 난다는 변명을 해가며 매일 밤 아내를 귀찮게 하곤 했다.

 아내의 사랑과 정성, 나의 노력과 젊은 시절의 패기와 열정. 땀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낡은 그 셔츠를 꺼내보며 새로운 2008년도를 당시의 열의로 시작할 마음을 다져본다.

 shson@lucom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