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CEO]변대규 휴맥스 사장

[파워CEO]변대규 휴맥스 사장

 본지는 2008년 기획으로 국내 주요업체의 CEO의 삶을 담은 이야기 ‘파워 CEO’를 매주 월요일 게재합니다. 기업의 CEO로만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역정과 고민, 삶의 뒷얘기를 들어봄으로써 그들이 독자의 곁에 한발짝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학자풍 CEO, 벤처 CEO의 대표선수로 떠올리는 변대규 휴맥스 사장의 삶이 평안하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한시도 떠나지 않는 고민과 걱정은 언제나 그를 짓누르고 있다. 하지만 의연해야 한다. 그가 흐트러진다면 휴맥스 가족은 물론이고 한국 벤처계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분당의 휴맥스 사옥 근처 아담한 일식집에서 만난 그의 모습은 웃고 있었지만, 결코 웃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다. 휴맥스 CEO로, 한국 벤처계의 대부로, 또 개인의 변대규로 그를 만났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사업가

 “실컷 공부해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놓고 무슨 사업이냐”며 지도교수는 변 사장을 만류했다. 학문에 대한 가능성을 본 지도교수의 만류는 끈질겼으나 그의 사업에 대한 고집을 꺾지 못했다. “무조건 학교라는 울타리보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픈 욕망이 나를 가만 두지 않았다”고 변 사장은 그 때를 회상했다. 어쩌면 사람 구실 제대로 할 수 없을지 모르는 사업에 당시 왜 그리 집착했는지…. 다소 여유로워진 요즘 변 사장의 회한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또 상황도 달라졌다. 요즘 변 사장을 만나면 은사의 첫 마디는 “너 같은 놈을 얼마나 많이 배출하는지가 교수의 능력”이라고 한다. 세상이 변하긴 변했다.

 일류대학 박사학위까지 따놓고 시작한 사업은 아이러니하게도 CD반주기였다. 일명 ‘가라오케 머신’이다. 창업 동지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늘상 하던 말이 “우리가 노래 부르는 ‘가라오케 머신’ 만들려고 창업했냐. 좀더 기술 지향적인 쪽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회의였다.

 반전을 이룬 것은 셋톱박스를 내놓은 94년이었다. 변 사장은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가장 중요한 결정의 시기였다”고 말했다. 목표는 인켈 같은 회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 한 직원은 “사장님! 인켈이 얼마나 큰데요. 너무 큰 꿈 아니에요.”라며 현실에 대한 직시를 요구했다. 그러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탓하지 마라. 눈을 크게 뜨라”

 벽이 너무 높다. 국내에서 사업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 그의 요즘 느끼는 사업에 대한 생각이다. “유럽의 경우 벽은 높지만 일단 오르고 나면 이후에는 넓은 평지가 펼쳐진다. 이에 반해 한국 시장은 오르고 올라도 계속 벽이다. 너무 힘들다.” 수퍼 울트라 왕갑(甲)으로 불리는 대기업들과의 관계에서 그도 다소 지친 모습이다. 그래도 안에서 어느 정도 승부를 봐야 하는 사업이기에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또 하나 그의 지론은 ‘제조 지향론’이다. “제조업 환경이 어렵다고 하는데 ‘탓’만해서는 안된다. 산업의 틀이 바뀌고 있음을 미리 감지하고 대처하면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성공 할 수 있다. 디지털TV가 그러하다. 일본이 독점하던 아날로그TV 시장이 디지털TV로 바뀌면서 환경에 대처한 한국이 세계시장을 점령한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그는 설명했다. 한국과 중국이 디지털을 놓고 자웅을 겨루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는 것이 변 사장의 상황론이다. 휴맥스가 TV사업에 뛰어든 것도 이같은 생각이 한자리를 차지했다.

 고민도 많다. 수많은 말이 그를 둘러 싸고 있다. 하지만 ‘변 사장도 맛이 갔네’ ‘휴맥스도 별 볼일 없네’라는 말이 가장 겁난다고 한다. “정말 듣기 싫은 말”이라고 답변했다. “휴맥스 정도의 회사를 꾸리는 것이 가장 어렵다. 하지만 자신한다. 세계시장에서 가장 전문화된 제품을 만드는 것은 나의 사명이기 때문”이라며 “2012년에 2조원의 회사를 만들것”이라고 자신했다.

#‘듣는 것’ 보다 ‘보는 것’이 스타일

 변 사장에게 결재받는 사람들은 보고서에 신경 쓴다. 보고서 하나로 모든게 끝나기 때문이다. 부연 설명도 필요 없다. 아랫 사람에게 온화한 인상으로 편안하게 대하지만 보고서 만큼은 예외다. “나는 보고 배운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에도 선생님의 강의보다 책에 열중했다. 수학시간에 영어공부 한적도 많다 (웃음). 경영도 책을 보며 배웠다. 요즘은 ‘진화심리학’에 흥미를 갖고 있다. 21세기는 생물학의 시대다. MIT도 생물학을 기본 과정으로 하고 있다.” ‘생물학과 인문학의 컴비내이션이 어떻고…’ 책 얘기가 끝날 것 같지 않아 말을 잘랐다.

 보고 배우는 것 중 그의 철칙중의 하나가 ‘출장의 법칙’이다. “세계 유명한 전시회란 전시회는 다 다녔다. 보고 배운 것은 철저하게 적용한다.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그는 전시회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간다. 전시회 출장을 가면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이게 나의 ‘룰’이다.” 그러기 위해 보고 배우는 것에 모든 정신을 집중한다. 아무리 별 볼일 없는 전시회라도 샅샅이 뒤지면 보고 배울게 넘쳐난다. 그만의 배움 방식이다.

#“요즘 고민? 참 많죠”

 직원들과의 회식자리에서 그는 자주 ‘직장인의 애로’에 대해 잘 느끼지 못한다는 질타를 받는다. 그는 “직원들의 마음을 머리로는 느껴도 마음으로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 방면에서 한박자 늦다”(웃음)고 시인했다. 그동안 사회생활의 전부가 월급을 주는 입장에 선 그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처지가 그렇다 보니 직원들이 바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좀 어려운 일이다.

 세상의 소리에 대해서도 고민이다. “주위에서 크게 이루었다는 소리를 하지만 나에게는 전혀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어느 정도를 해낼 수 있는 경영자인가?’에 더 고민한다. 기업의 사회에 대한 역할도 생각하게 된다. 목표에 대한 질주는 자신하지만 주변에 대한 모든 것은 고민이다.”

 언론노출 역시 피하고 싶다. 하지만 잘 안 된다. “민화(이민화, 메디슨의 창업자)형이 부럽다.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으니 얼마나 편하겠는가. 그런면에서 휴맥스는 나에게 보상해야 한다.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인데, 그럼에도 가끔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은 전적으로 휴맥스 때문이다. 휴맥스가 알려져야지, 내가 알려져서는 안되는데, 요즘 거꾸로 된 것 같다(웃음)”

#“희소가치가 있는 열정에 투자하라”

 벤처는 경제변혁운동이다. 세상을 움직이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경영이라면 벤처 사장보다 대기업 임원이 훨씬 잘한다. 하지만 벤처에 필요한 것은 ‘경영’뿐만이 아니다. ‘열정’과 ‘도전의식’이 있어야 한다. 열정과 도전의식은 희소가치가 있다. 사람을 신나게 하는 희소성의 열정이 한국경제 뿐만 아니라 사회의 근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면 정부와 기업들은 벤처를 도와야 한다.” 하지만 벤처기업에게 자성의 목소리도 잊지 않았다. 세상사가 처음에는 좋은 뜻이지만 후에는 이익에 눈멀어 스스로 자멸함을 경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변대규 사장은 ?

 변대규 사장은 지난 1989년 서울대학교 제어계측공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휴맥스의 전신인 건인시스템을 창업하며 기업가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영상·음향기기에서 출발한 사업은 지난 1996년과 1999년 각각 디지털 위성방송 및 케이블방송 셋톱박스를 성공적으로 개발, 해외 시장에 진출하면서 승승장구를 시작했다.

 변 사장이 사명을 ‘사람에게 최고의 가치를 준다’는 뜻의 휴맥스(휴먼 맥시마이제이션: Human Maxization )로 바꾼 것도 이때다. 현재 독일·미국·일본·영국 등 해외 10여개 국가에 현지 법인과 판매망을 확대하며 연 매출 8000억원대의 글로벌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변 사장은 디지털 셋톱박스를 발판으로 디지털 TV, 퍼스널 기기 등을 아우르는 컨버전스 가전기업으로 키워낸다는 목표다.

  이경우기자@전자신문, kwlee@, 사진=윤성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