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개막을 하루 앞둔 6일(현지시각) 저녁,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술 기업의 수장 빌 게이츠는 언제나처럼 보라색 스웨터를 입고 단상에 올랐다. 15년간 11번 CES 키노트에서 세계 IT인들에게 미래를 설파하던 겉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이날은 뭔가 달랐다.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 수장으로 진행하는 마지막 CES 키노트를 자신이 직접 출연한 ‘작별 동영상(farewell video)’을 보여주며 시작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클루니 등 인기인을 카메오로 출연시키며 마이크로소프트를 그만두고 뭘 하고 싶은지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객석은 보기 드문 장면에 웃음을 터뜨렸다. 게이츠 회장은 심지어 주어진 70분의 키노트 절반을 엔터테인먼트/디바이스 부문 총괄 로비 바흐에게 맡겨 중요한 제휴를 발표하게 했다. 더 이상 자신과 마이크로소프트가 동일하지 않음을 보여준 것이다.
바통을 이어받은 바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포드와 제휴를 맺고 차량 내 음성인식 커뮤니케이션 및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공동 구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기술은 911 긴급 구호 기능을 포함해 라이벌인 제네럴모터스의 온스타 시스템과 경쟁한다. 바흐는 이달 말부터 X박스의 온라인게임 서비스인 ‘X박스 라이브’에서 ABC와 디즈니 채널, MGM 등의 주문형비디오(VOD) 콘텐츠를 제공할 계획도 밝혔다.
본격적인 거실 공습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솔루션이 PC를 넘어 거실·사무실·자동차·모바일 기기 등 모든 곳에 탑재될 것이라는 선언인 셈이다.
마이크를 다시 넘겨받은 게이츠 회장은 ‘모바일 내비게이터(가칭)’라 부르는 개인용 단말기를 선보이며 “지나간 디지털 10년은 큰 성공이었다”며 “다음 10년 동안 우리는 더욱더 빠르고 멀리 나아갈 것”이라며 마지막 키노트를 마무리했다.
정진영기자@전자신문, jych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