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초로 기억된다. 과천의 정부청사에서 국무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당시 새 정부가 들어서고 1년 동안 미국계 컨설팅회사가 주축이 되어 연구한 정부조직법개편안이 국무회의 통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속에 정보통신부 해체안이 들어 있었다.
“이의 없습니까?” 대통령이 물었다. “이의 있습니다”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이던 본인이 나섰다.
“정보통신부 해체안은 3류안입니다. 정보통신부·문화부 같은 부서들이 미래의 새로운 경제부처입니다. 더욱 강화해야 될 시점에 폐지라는 건 말도 안됩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이 안을 낸 사람들이 구시대 3류 지식인들입니다.”
당시 본인 발언의 대략이다. 그후 다시 청와대로 대통령을 찾아 뵙고 추가 설명을 드린 내용은 이보다 훨씬 강했다.
“1890년대 일어난 갑신정변이 왜 우정총국에서 시작되었을까요? 당시에도 세계 변화의 물결을 우정국이 가장 먼저 감지했다는 증거입니다. 정보통신부는 세계의 새로운 흐름,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창구입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잠시 심사숙고한 후 김종필 총리에게 “다시 한 번 검토해 보시죠”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해서 살아난 정보통신부가 그 후 고속통신망을 구축하고 우리나라의 IT인프라를 세계 제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산업사회에서 극단적인 발전을 이룩한 나라들, 예를 들면 일본·독일·영국·프랑스 등이 정보화사회로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에 한 발 뒤지는 이유는 산업사회 엘리트들이 아직도 미래 산업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도 그 함정에 빠지려는 순간에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당시 산업자원부장관의 독백이 생각난다. “정보통신부를 산업자원부의 하나의 국으로 통합했으면 좋겠는데…”이것이 한국의 산업화시대를 리드했던 재경부·산자부 엘리트들의 생각일 수 있다. 그러나 솔직이 말해서 그 쪽에는 전문가가 없다. 정보통신 부문을 공부한 석·박사, 각종 학회, 대학 교수 등 수 만명이 정보통신부와 그 산하에 진을 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분리할 수 있다. 그러나 미래를 향한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는데 정보통신부의 정책 수행기능은 이제 시작이다.
통신과 방송의 융합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지금까지 방송은 권력을 수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IPTV시대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수 만개의 TV가 명멸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 갈 것이다. 거기에 정책이 있어야 하고 수단이 있어야 한다. 수 많은 신산업을 일으킬 수도 있다.
정책기능을 꼭 일원화하는 것이 선은 아니다. 정책의 일원화는 때로 독선과 무책임을 수반할 수 있다. 하나의 정책을 두 개 정도의 부처에서 분담하여 경쟁케 함으로써 효율을 더욱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인수위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어떻게 융합시켜 미래 지향적인 정책을 제시할 것인지를 고민할 때이다.
남 궁 석 전 정보통신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