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부 통폐합이 핫이슈로 등장한 가운데 국민 편익을 위하고 신산업 발전을 꾀할 최소한의 규제를 펼칠 IT 전문 행정(규제·정책)기구에 대한 요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IT로 엮은 통신·방송·콘텐츠 생태계에 걸맞은 새로운 규제 및 정책 수립체계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부처 존폐 여부에 시선이 집중되면서 새 질서에 걸맞은 규제에 대한 논의가 뒤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통신업체의 한 임원은 “정통부가 사라지면 인터넷(IP)TV를 비롯한 각종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문화관광부·산업자원부·방송위원회로 각각 달려가야 하는 등 이중, 삼중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라며 “방송통신위원회 같은 규제 전문기관과 정보미디어문화부 같은 독임제 행정기구가 일관된 철학하에 IT 관련 규제와 정책을 펼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당장 10년 묵은 체증인 ‘통신방송 행정기구 통합’을 해결하고 IPTV와 같은 융합형 서비스를 둘러싼 규제·정책 기구 간 견제와 균형을 모색할 때라는 것이다. 규제체계가 국민 편익으로 무게 추를 기울이면 산업이 허덕이고 산업발전에 치중하면 국민이 불편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 편익’과 ‘신산업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IT 융합형 규제 기구와 정책 기구 간 협업체계가 동시에 논의되고 하루빨리 갖춰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국회 방송통신특별위원회에서는 1년여간 논의한 끝에 ‘대통령 소속 위원회가 규제 집행만 담당한다면 독임제 행정기구에 관련 진흥 정책·집행 기능과 함께 규제정책까지 맡겨야 한다’고 정리했다. 또 대통령 소속 위원회에 규제 정책·집행 기능을 맡기고 독임제 행정기구에 진흥 정책·집행을 맡겨 업무영역을 명확하게 나누자는 주장도 유력한 대안의 하나로 떠올랐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두 가지 안 모두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책이지만 규제 정책권 소관 문제를 더욱 세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규제 정책(수립) 권한은 법령 제·개정권을 말하고 법령이 곧 규제 기준이자 근본”이라고 말했다. 그는 “헌법과 정부조직법상 법령 제·개정권은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인 중앙행정기관장의 고유 권한”이라며 “정통부와 같은 독임제 행정부처가 규제 정책권을 갖고 방송통신위원회와 적절한 견제와 균형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구체적으로 공정경쟁 관련 규제 정책·집행을 맡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무총리 소속기관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공정위가 규제를 집행하고 관련 정책을 짜되 그 기준이 되는 소관 법령은 국무총리나 의원입법으로 제·개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부처 존폐의 논의로만 집중하다가 제대로 방향을 잡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국무총리 소속기관으로서 법령을 제·개정할 때에는 재정경제부 장관과 협의해야 하며 국가인권위원회나 청렴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영국·호주·이탈리아 등 해외 국가도 규제 관련 입법권을 중앙행정기관과 입법기관에 두고 있다. 결국 규제 집행(위원회)과 정책(독임제 행정기구)이 원활한 협력 관계를 정립하되 서로 견제할 수 있는 체계를 설정해야 할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90년대 후반 컴퓨터와 TV가 서로 기웃거리다 못해 결합해버린 데 이어 콘텐츠와 네트워크가 한 몸이 되려는 지금, 통신과 방송으로 나뉜 현 규제체계를 하나로 묶는 것은 시대적 요구라는 게 정부와 산업계 공통 인식이다. 아날로그 시대 이분법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디지털 융합시대에 걸맞은 새 규제체계를 찾아야 하는 게 새 정부의 숙제다.
이은용기자@전자신문, eylee@
◆해외 통신방송 관련 법령 제·개정권
-국가 / 정책기관 / 규제기관 / 법령 제·개정권 소관
1. 미국 / 연방통신위(FCC) / FCC / 의회(FCC=준입법권)
2. 일본 / 총무성 / 총무성 / 총무성
3. 호주 / 브로드밴드통신디지털경제부(DBCDE) / 통신미디어청 / DBCDE
4. 영국 / 기업규제개혁부(BERR)·문화미디어체육부(DCMS) / 통신청(OFCOM) / BERR·DCMS
5. 이탈리아 / 정보통신부(MOC) / 통신규제청(AGCOM) / MOC
6. 독일 / 연방경제노동청(BMWA)·주미디어청(LMA) / 연방네트워크청·연방카르텔청/BMWA·L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