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 업계의 상생 전략으로 주목받았던 삼성전자·LG필립스LCD(LPL)의 장비 교차 구매가 결국 불발로 끝날 전망이다. 동일한 기술규격과 크기로 장비 교차 구매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여겨졌던 8세대 라인 신증설 투자에 양사는 기존 협력사만 선정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LPL은 지난 12월 중순 각각 8세대 2단계 라인 증설과 8세대 라인 신규 발주에 들어갔지만 기존 협력사들만 공급사로 선정한 것으로 9일 확인됐다.
LPL은 지난달 말 8세대 라인 신설투자에 본격 착수, 현재 기존 협력사 가운데 에이디피엔지니어링만 발주를 시작했으며 총 100여종의 장비·부품은 80여개 종전 협력사를 대상으로 검토중이다.
LPL 관계자는 “이제 순차적으로 장비발주를 막 시작한 상황이어서 확답할 수는 없지만 일단 내부적으로는 기존 협력사들로 국한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삼성전자도 지난달 중순 디이엔티·아이피에스·케이씨텍 등 기존 8세대 1단계 라인의 협력사에 한해 2단계 라인의 장비 발주에 착수했다.
삼성전자로선 개발이 미비한 LPL 협력업체의 장비를 쓰는데 부담스럽고 일정도 촉박한 입장이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가동시기를 맞추기 위해 8세대 2단계 라인 증설 투자에는 기존 협력사들만 참여시킬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상완 삼성전자 사장과 권영수 LPL 사장은 지난해 10월 디스플레이협회를 통해 장비 및 패널 교차 구매의 원칙에 합의한 바 있다.
◆뉴스의 눈
지난해 말 상대방의 공급사 가운데 각각 한 개 협력사에 장비를 발주할 때만 해도 8세대 교차 구매 가능성은 높았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7세대 라인에서 LPL의 장비협력사 가운데 디엠에스의 고집적 세정장비 한 대만을 구매했으며 LPL도 시범적으로 삼성전자의 협력사인 참앤씨에 장비를 발주하는 선에 그쳤다.
한껏 기대를 모았던 8세대 장비 교차 발주가 불발로 끝난 것은 상생협력이라는 ‘원칙’보다 조기에 라인을 성공적으로 구축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앞섰기 때문이다. 우선 투자 시점이 공교롭게도 맞물린 탓이 크다. 삼성전자로선 8세대 1·2단계 라인을 올 하반기 가동하기로 했던만큼 지난해 11월에는 발주를 해야만 했다. 뜻하지 않게 비자금 사태라는 복병을 만나면서 한 달 이상 늦어졌다. 서둘러 라인 증설을 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인 셈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8세대 2단계 라인까지는 기존 협력사로 할 수밖에 없지만 그 다음에는 LPL 협력사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급하기는 LPL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와 달리 8세대 라인을 신설 투자하는 LPL은 시간도 여의치 않고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LPL 관계자는 “삼성전자도 급한데 그쪽 협력사의 참여를 강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당초 장비 교차 구매의 효과로 기대했던 발주가격도 생각만큼 낮출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제 막 장비 발주에 들어간 상태여서 향후 순차적으로 진행될 협력사 선정에서는 교차 구매의 여지를 남겨두기로 했다.
한 장비 협력사 관계자는 “솔직히 한 곳의 투자를 따라가기도 벅찬데 교차 구매를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면서 “굳어져 왔던 양사의 폐쇄적인 협력사 정책을 당장 바뀌기 어렵지 않겠나”고 되물었다. 장기적으로는 디스플레이 산업 전반이 부품·장비·패널·세트에 이르는 수직계열화가 대세인 상황에서, 패널 업체로선 장비 협력사에 선행투자가 불가피하다는 점도 장비 교차 구매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또 다른 장비 협력사 사장은 “대만이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우리를 바짝 쫓아오는 데는 삼성과 LPL의 반면교사 효과 측면이 크다”면서 “세대가 진화하면 할수록 산업 전반의 투자비 부담도 함께 커진다는 점에서 교차 구매는 반드시 뚫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서한기자@전자신문, h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