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모든 희로애락이 코트에 있다.’
스포츠와 드라마는 비슷한 게 많다. 결말을 예측하기 어렵다. 강자와 약자가 뒤바뀌는 비선형적 상황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상황 기제’도 유사하다. 선수의 투혼에 매료당하는 관중은 배우의 열연에 감동하는 관객에 다름아니다. 이런 점 때문인지 스포츠를 주제로 한 영화는 유독 많다. ‘록키’ ‘그들만의 리그’ ‘불의 전차’ 등 유명한 영화만을 열거해도 한 페이지가 훌쩍 넘어간다. 스포츠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매력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스포츠 영화에 열광하는가? = 킥오프 순간. 조바심과 갈증이 닥친다. 흥분한 구경꾼들은 승리를 갈망하며 그라운드를 응시한다.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예상할 수 없는 긴장감이 우리를 덮치는 순간, 관중들은 선수와 동일시된다. 스포츠 영화의 매력도 마찬가지다. 습관적 수동성에 길들여진 관객은 스포츠를 통해 ‘집단적 흥분’에 빠진다. 일반 멜로 드라마가 주는 개인적 카타르시스와 차원이 다르다. 냉혹한 승부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스크린 속 스포츠는 옆자리 관객과의 동일한 호흡을 만든다. 스포츠 영화 관객 모두는 심장이 터질 듯한 짜릿함을 함께 느낀다.
스포츠 영화는 그 순간을 고집스럽게 물고 늘어진다. ‘애니기븐선데이’에서 알 파치노가 외치는 ‘1인치’나 필 앤든 로빈슨 감독의 ‘꿈의 구장’은 관객에게 과거 극적인 순간을 떠올리게 하며 일생을 살아가는 자양분을 제공한다. ‘그들만의 계절’에서 나오는 권위주의적인 감독은 관객이 하나가 되는 빌미를 제공한다. ‘스타들의 생생한 이야기’는 스포츠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을 형성한다. 스포츠 스타들이 이야기 자원의 보고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슈팅 라이크 베컴’은 베컴의 이름만으로 120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분노의 주먹’ ‘알리’ 등 영웅담을 담은 영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중요한 것은 경기가 아니라 드라마 = 스포츠 영화의 주재료는 스포츠지만 이것만으로는 ‘좋은 스포츠 영화’가 될 수 없다. 특히 실존 인물이나 결과가 알려진 실제 경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경우 스포츠에만 기댄다는 것은 모험에 가깝다. 좋은 스포츠 영화는 스포츠에 제대로 된 드라마를 덧대는 순간 탄생한다. 스포츠 영화의 재미를 판가름하는 것을 바로 드라마의 유무(有無)다.
지난 10일 개봉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감독 임순례, 출연 문소리·김정은)’은 스포츠 영화에 드라마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생순’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에서 덴마크에 아깝게 진 여자 핸드볼 대표팀을 그린 스포츠 영화다. 경기 결과는 영화의 완성도나 재미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우생순’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핸드볼이 아니라 ‘아줌마’들의 아름다운 의기투합이기 때문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남루한 남자들의 삶을 제대로 그린 임순례 감독과 ‘화려한 휴가’로써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생생하게 살려낸 나현 작가는 핸드볼과 드라마의 화학 작용을 우리들을 울릴 만한 감동 요소를 곳곳에 배치했다. ‘엄마 선수’를 세워 일하는 어머니의 일상을 촘촘히 그려냈고 선수들 사이의 세대 차를 그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불협화음을 드라마에 녹여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덴마크와의 결승전. 임순례 감독은 20분이라는 긴 시간을 코트만을 응시한다. 관객 등 배경 샷이 사라진 화면에는 인생의 역정을 공과 함께 날리는 그들의 리얼 스토리만 남았다.
한정훈기자@전자신문, exist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