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군사력과 컴퓨터 산업 리더십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군민 합동작전이 절정에 이르고 있다. 미국 국방부 중앙연구소인 DARPA와 미국 컴퓨터 관련 기업들이 총출동해 진행한 ‘고효율 생산성 컴퓨팅 시스템(HPCS High Productivity Computing System)’ 프로젝트가 종반에 이르고 있기 때문. 미 국방부가 1조원 예산을 투자한 이 사업은 3세대 슈퍼컴도 역시 미국 땅에서 탄생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HPCS 숨은 의미 = 무어의 법칙에 따라 프로세서 성능은 18개월마다 2배씩 향상되지만, 신약 개발·비행기 설계·애니메이션 영화 제작 등은 이 속도를 못 따라간다. HPCS는 슈퍼컴에서도 똑같이 나타나는 생산성 문제를 혁신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2002∼2010년까지 8여년에 걸쳐 진행되는 이 사업의 예산 규모는 약 1조원이며 매사추세츠공대(MIT)·IBM 등 유수 대학과 기업이 참여한다. 개념연구 1년, 연구개발 3년, 제품개발 4년의 3단계로 나눠 추진 중인데 올해가 바로 제품 개발 종반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시기다.
이 사업은 최종 결과물로 상용 제품의 원형을 구체적인 상용화 계획과 함께 제출하도록 돼 있다. 미국 정부가 상용화한 제품을 구매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워놓을 것을 고려할 때, HPCS는 2010년대 초반에 출시할 차세대 슈퍼컴퓨터 개발 계획과 다름없다는 것이 프로젝트 안팎의 평가다.
◇3세대 슈퍼컴의 관건은 ‘프로그래밍 언어’ = 보통 벡터형 컴퓨터를 1세대 슈퍼컴, 클러스터형 컴퓨터를 2세대 슈퍼컴이라고 구분한다. HPCS가 만들어 낼 3세대 슈퍼컴은 클러스터형처럼 가격이 저렴해 성능을 빨리 올릴 수 있으면서도 벡터형처럼 프로그램 개발이 쉬운 1·2세대의 장점만을 모아놓은 컴퓨터가 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HPCS 관계자들은 “이번 사업 결과로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가 등장해 슈퍼컴퓨터 응용 애플리케이션 개발 환경이 확 바뀔 것”이라면서 “HPCS는 포트란, C, C++ 등 기존 언어를 통합해나가면서도 상대적으로 열악한 컴파일러·디버거·라이브러리 등을 대폭 보강해 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 HPCS가 발견한 사실들= 이번 생산성 연구는 응용프로그램 등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에 비하여 진화속도가 늦어 생산성 향상의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점을 체계적으로 밝혀냈다. 대규모 응용프로그램은 수십명이 참여해 크기가 수십만라인에 이르고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데는 10년 정도가 소요된다. 이러한 규모에 비하여 응용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체계적인 소프트웨어 방법론이 활용되고 있지 않으며 현재 별다른 개발도구도 없다. 미 국방부는 HPCS 사업을 통해 발견한 문제점을 미국 에너지부 (DoD·Department of Energy), 미국과학재단 (NSF·National Science Foundation) 등과 연계해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절차를 통해 탄생할 3세대 슈퍼컴은 2010년대 세계의 고성능 서버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을 또 한번 세계 슈퍼컴 시장의 선두주자로 올려놓을 것이다.
이지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책임연구원·UCSD 초빙교수 jysoo@kisti.re.kr
◆ 용어설명
DARPA(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미 국방부 산하 중앙연구소로 군사 목적으로 필요한 신기술 개발을 전담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개발된 NLS과 같은 네트워크 기술, 하이퍼텍스트 시스템, 그래픽인터페이스 등은 전세계 산업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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