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야에나 고수(高手)가 있다. 고수들은 확실히 다른 ‘공통점’을 갖는다.
20대 후반의 한창 시절에 친구와 함께 무술 스승을 찾아 잠시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전에 두어 가지 무술을 조금 접한 정도였는데, 여행의 테마를 그리 정하고 보니 모험을 떠나는 기분도 들고 정말로 무슨 신비로운 일을 겪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 간 곳이 밀양의 산꼭대기에 숨어있는 암자인데 그 당시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작은 폭포를 끼고 있는데 밖에서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산꼭대기에 도착하고 나니 날이 저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밥 짓는 냄새를 따라 손으로 어둠을 더듬어가며 한 시간가량 풀숲을 헤매고 나서야 암자를 찾을 수 있었다. 그곳에는 요양을 오신 바짝 마른 L 스님이 밥을 짓고 계셨고, 얼마 후에 시내에 가셨던 선무도의 고수이신 K 스님이 오셔서 같이 밥을 먹고 밤 늦게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벽에 비가 운치 있게 내렸다.
다음날 마루에 앉아 햇볕을 쬐며 포도를 까먹으며 담소를 나누다가, 무술에 관심이 있다는 말에 K 스님은 (젖은 흙과 돌이 박혀 있는) 마당에서 손가락 세 개로 팔굽혀 펴기, 손목으로 팔굽혀 펴기, 박수치며 팔굽혀 펴기 등을 해보라고 나에게 주문했다. 주어진 개수를 채 못하자 요양 오셨다던 L 스님이 ‘쯧쯧’ 하시더니 마루에서 바람 같은 속도로 팔굽혀 펴기를 하기 시작했다.
손가락과 손목은 물론이고 박수 두 번씩 치면서. 어안이 벙벙하고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그날 나는 선무도의 가장 기본 동작을 배우고 그걸로 마당의 목인(木人)을 수천 번 때린 것 같다. 며칠 뒤 온몸에 멍이 든 채로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하산을 했다. 겉멋에 비해서 기초 체력이 부족했다. 이후에 만난 다른 고수는 동작 시 발의 벌어진 각도 때문에 허리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지적을 해주었다. 모든 동작의 기초는 체력과 허리의 쓰임이다.
고수들은 잔기교에 집착하지 않고 기초의 부족을 꿰뚫어 보고 교정토록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