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에 티셔츠, 열정적인 손동작. 전세계 IT업계를 흔들던 소프트웨어의 제왕, 빌게이츠가 일선에서 물러난다.
하지만 ‘빌게이츠 은퇴’라고는 단정 짓기에는 아직 적합하지 않다. 빌게이츠가 해오던 일상적인 경영과 리더로서의 역할은 스티브발머가 맡게 되겠지만, 빌게이츠는 은퇴 이후에도 여전히 마이크로소프트의 의장(Chairman)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빌게이츠 은퇴 이후의 마이크로소프트를 논하는것은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할수도 없고 객관적일수가 없다.
빌게이츠가 은퇴하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에 확실하게 영향을 미친다.오라클의 창업자 래리엘리슨(Larry Ellison)과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잡스(Steve Jobs)처럼 하이테크 회사들은 한사람이 CEO의상의 정신적인 리더로 그의 철학에 따라 컬트적 기질이 있는 기업문화로 경영된다.
하지만 회사가 오래 지속되려면 언젠가 리더는 바뀌기 마련이다. 만약 그런 리더가 떠나게 되면 회사는 방향을 잃고 쇠퇴해 없어지거나, 아니면 결국 다른 회사에 팔리기도 한다. 지금 이시기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한사람에 의해서 운명이 결정되지는 않는 회사가 되어야 하는 중요한 변천시기이다.
빌게이츠는 이 사실을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었고 고민을 많이 해왔다. 2000년 1월에 이미 CEO 자리를 스티브발머(Steve Ballmer)로 내정해 놓고 은퇴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빌게이츠가 떠난 마이크로소프트에 영향은 생각만큼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또 앞으로 빌게이츠가 일상의 업무에 관한 결정은 내리지 않겠지만, 여전히 의장이라는 위치가 그와 MS의 떨어지지 않는 관계설정을 해놓고 있다.
따라서 실리콘밸리 지역에서는 빌게이츠의 은퇴에 관해 무덤덤한 반응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실리콘밸리 지역에 매우 오랫동안 별로 큰 영향력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마이크로스프트가 현재 무엇을 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별 관심이 없다.
‘벤처의 방향등’이기는 하지만 ‘추종의 표본’은 아니다. 오히려 다소 노쇠한 MS보다 넘치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기업에 대한 동경이 크다. 젊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마이크로소프트보다는 구글이나 패이스북 같은 성장 잠재력이 더 큰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더욱 선호한다. 그들은 특별히 마이크로소프트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좋아하거나 싫어하지도 않는다.
또한 카이푸(Kai-Fu Lee), 죠베다(Joe Beda), 마크루커스키(Mark Lucovsky) 등과 같은 좋은 인재들이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구글이나 다른 실리콘밸리 벤처회사로 자리를 옮기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특별히 마이크로소프트의 잘못은 아니다. 여전히 많은 엔지니어들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미래를 신뢰하며 거기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실리콘밸리의 환경이나 비즈니스 특성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리콘밸리의 사업가나 벤처투자자들은 시장을 뒤흔들고 현 체제에 도전하는 제2의 마이크로소프트가 될 수 있는 새로운 회사를 만들고 거기에 투자하는데 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실리콘밸리의 많은 신생 회사들은 매우 흥미롭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품들을 만들고자 하고있다.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실리콘밸리에 유능한 인재를 끌어들이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정양섭 yangtheman@gmail.com
※필자는 현재 기가핀 네트웍스(GigaFin Networks)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으며 실리콘밸리 K group의 멤버로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