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전봇대 소동`의 이면

 “전봇대 꼭대기에만 국민 시선이 걸려 있습니다.”

 전날(20일) 전남 대불공단에서 문제가 된 전봇대 3개 중 하나를 급거 옮기긴 했지만 21일까지 산업자원부 공무원들은 뒤숭숭했다. 국민 여론이 온통 ‘전봇대 하나 못 뽑아내는 중앙부처’라는 쪽으로만 쏠리자 최근 정부조직 개편으로 한껏 고무됐던 표정에 허탈감이 깊게 감돌았다.

 한 산자부 고위인사는 “전봇대는 여러 개선 사항 중 눈에 보이는 한 가지일 뿐”이라며 “공단 전체의 경쟁력을 높일 근본적인 구조 변경이나 설계 업그레이드 논의를 완전히 뒤로 미룬 채 전봇대 하나에 매달린 게 우리의 현주소입니다”고 말했다.

 사실 대불공단에서 전봇대로 곤란을 겪는 선박 블록 제조업체는 전체 입주업체의 20% 정도에 불과하다. 오히려 나머지 80% 업체들은 선박 블록업체가 대형 블록을 운반할 때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교통이 차단되거나 지체돼 어려움을 겪는 일이 다반사다. 소수인 선박 블록업체의 수송 통로와 대다수 일반 입주 기업의 물류 체계를 한꺼번에 개선할 필요성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대불공단의 전력선 지중화율이 58%로 다른 지역 산업단지에 비해 결코 열악한 수준이 아니라고 귀띔했다. 그는 “지금도 지하 매설을 진행하는 차에 하필이면 당선인이 봤던 그 전봇대가 다시 그 자리에서 눈에 띄인 게 문제라면 문제”라면서 한숨을 쉬었다.

 대한민국은 이명박 당선인의 한 달여에 걸친 CEO형 행보를 숨가쁘게 좇아왔다.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 내실 있는 ‘큰 그림’을 그리겠다는 새 정부의 가치에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전봇대’는 그릇된 탁상행정과 전시행정의 상징이다. 하루빨리 고칠 일이나 전봇대 하나 옮긴다고 새 정부의 가치를 구현하는 것은 아니다.

  이진호기자<디지털산업부>@전자신문, jho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