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외국인들에게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서울글로벌센터’를 설립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개방과 세계화의 시대에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가보다. 그도 그럴 것이 제대로 된 다국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 사이트도 드물거니와 회원 가입이라도 하려면 주민등록번호나 외국인 등록번호를 요구한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등록시키고 번호를 교부하는 것도 그들에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닐진데 그나마도 외국인 등록번호를 입력했을 때 제대로 작동하는 경우는 더 드물다고 한다. 초고속통신망 보급률과 인터넷 이용률 세계 선두권을 다투는 나라의 이면이다. 이용요금을 내지 않고 출국할까봐 휴대전화 후불요금제 가입도 되지 않는다니 이동통신 강국이라는 칭호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개방된 나라 중 하나이며 다민족, 다국적 문화를 자랑하는 영국에서 외국인으로 생활하면서 이용하는 IT 환경은 우리에 비하면 수준급이다. 행정기관 사이트부터 인터넷 쇼핑몰, 동호회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홈페이지가 넷스케이프나 파이어폭스 등 웹브라우저를 가리지 않고 동일한 페이지를 보여주며, 동일한 기능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HTML 표준을 지켜 작성되기 때문이다.
애플 매킨토시 이용자들도 아무 불편 없이 모든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국내 웹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만나게 되는 액티브엑스 설치도 없다. 영국에는 주민등록번호라는 것 자체가 없으므로 회원 가입시에 입력해야 하는 핵심 정보는 e메일 주소이다. 때로 물건 배송 등을 위해 오프라인상의 주소를 필요로 하는 경우에는 우편번호가 중요하다.
공인인증서 발급과 보안 모듈 설치 없이도 인터넷 뱅킹을 이용하는 데 아무 불편이 없다. 본인확인을 위해 은행에서 미리 설정한 비밀번호를 우편으로 보내는 데 이것을 외야 한다. 사용자가 설정한 암호는 키보드 해킹 방지를 위해 드래그 다운 메뉴에서 클릭해서 선택한다. 물론 비밀번호와 암호가 유출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은 사용자의 책임이다.
한국에서처럼 각종 제세공과금과 과태료도 온라인상에서 납부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별도의 회원 가입이나 인증서는 필요하지 않고, 계정 번호나 고지서 상의 코드를 입력하고 직불카드로 바로 처리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내 공과금이나 과태료를 대신 내 줄 일은 없을 것이니 보안 절차가 간소한 것이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홈페이지는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로 간결히 꾸며진 것이 특징이다.
공영방송으로 시청료를 받는 BBC는 거의 모든 자체 프로그램의 인터넷 다시보기, 심지어 다운로드 받아 PC에 저장해 두고 보는 것을 BBC i-플레이어 서비스를 통해 무료로 제공한다. 통신방송 융합의 흐름에서 BBC의 목표는 콘텐츠 공급자로 거듭나는 것이다.
물론 영어를 읽을 수 있어야 하겠지만, 영국에서 외국인으로서 인터넷을 생활 속에서 이용하는 것에는 아무 불편이 없다. 인건비가 비싼 탓에 콜센터에 전화를 걸면 몇분씩 기다리기 일쑤고, 가뜩이나 안들리고 안나오는 영어에 고통받느니 웬만하면 인터넷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습관이 들고 만다.
통신 인프라는 한국이 낫다. 영국의 초고속통신망은 아직 10Mbps 수준의 ADSL 서비스와 케이블모뎀이 대부분이고 당일 설치를 보장하는 한국에 비하면 몇주씩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글로벌 경제를 지향하는 우리나라에 외국인들이 보다 편리하고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 환경이 자리잡기를 기대해 본다.
<박상욱 박사/ 서섹스대 과학기술정책연구단위(SPRU) sparkscie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