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 뽑기’를 둘러싼 진·농담이 잊혀지나 했더니 다시 재밋거리로 등장하게 생겼다. 당선자의 말 한마디로 공단의 오랜 숙원이 해결된냥 치켜 올린 게 엊그제인데 뽑아놓고 보니 엉뚱한 걸 뽑았단다. 권력자의 말 한마디가 현실화되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정책 집행의 프로세스는 ‘여전히, 딱, 이 수준이구나’ 하는 생각을 버릴 수 없게 한다.
새 정부가 추진하려는 요금 인하 정책을 비롯한 여러 IT정책 역시 전봇대 사건과 자꾸 겹친다. 요금 인하는 일반 국민에게 피부로 와닿는 정책은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의 통신 요금은 ‘전화세’가 아니다. 당선자의 지시 하나로 뽑히는 전봇대의 운명이 아니라는 거다.
금방이라도 안을 내놓을 것처럼 요금 인하 의지를 밝힌 새정부 인수위원회의 체면은 그야말로 구겨진지 한참이다. 몇 주 동안 기본료 인하를 비롯해 누진제, 쌍방향통신요금제 등 무책임한 방안이 등장했을 뿐이다. ‘경쟁 활성화 및 정통부 정책 존중’으로 한 발 물러선 인수위의 태도는 ‘주워담기 어려운 말을 내뱉어 쩔쩔매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경쟁 활성화를 통한 요금 인하는 현 정부의 ‘통신 규제 완화 로드맵’에 분명히 나와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요금 인하 의지가 4월 총선의 표를 얻기 위한 졸속행정이라는 비판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인위적인 요금 인하는 기업의 소극적 투자로 귀결된다. 이는 네트워크 및 솔루션 등 통신서비스 후방산업의 축소로 이어진다. 투자에 소극적인 통신사 CEO를 불러 ‘으름짱’을 놓는 정부 역할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정부는 ‘요금 인하와 투자 활성화’를 분명 함께 고민해야한다.
새 정부는 앞으로도 규제 완화를 비롯해 다양한 통신·IT정책을 결정해야한다. 문제의 ‘전봇대 뽑기 작전’조차 전체 도로 시설 상의 문제는 아니었는지 전력 공급을 위해 설치한 전봇대 구조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공단 생성과 역할 등이 감안됐어야 한다. 하물며 통신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금 인하를 비롯한 IT정책을 전봇대 하나 뽑는 일로 생각하면 되겠는가. 출범하기 전부터 나오는 새정부에 대한 이런 평가를 인수위는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신혜선기자@전자신문, shin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