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과학기술로 인해 뒷전으로 밀려났던 한지 등 전통 과학기술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한지·천연염색·발효음식 등 전통 과학은 대량 생산기술을 바탕으로 한 서양 문물의 등장으로 한물간 아이템으로 전락했다. 높은 가격과 희귀성으로 인해 일부에서만 선호하는, 일반인은 접하기 어려운 품목으로 치부됐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홀대받던 전통 제품들이 과학성을 인정받고 웰빙 바람이 불면서 본연의 생명력으로 다시 깨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전통품목은 바로 한지. 한지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과학·문화·의학·생활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주요한 소재로 부상하고 있다.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한지의 특징은 보존성이다. 600년이 넘은 직지심경에서 보듯이 한지의 보존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쓰고 있는 종이는 로진사이즈 처리와 황산알루미늄의 사용으로 강한 산성(pH4-5.5)을 띠게 되어 세월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가수분해로 종이가 열화된다. 결국 100여년이 지나면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분해되고 만다.
또 고유의 방법으로 만들지 않는 한지는 비록 펄프종이의 함유 성분이 우리 한지를 만드는 성분과 비슷하다고 할지라도 표백용으로 첨가되는 수산화나트륨과 차아염소산으로 인해 산성을 띠게 된다.
이러한 제조 과정의 차이로 한지는 천년이 지나도 보존되는 반면에 펄프종이는 오랜 기간의 보존이 불가능하다.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전통한지의 많은 장점을 현대 제지공업과 접목한다면 장판지·도배지·한지 장식품뿐 아니라 장기간 보존을 필요로 하는 서적을 만들 수 있다. 또 한지는 기계적으로도 흡음성과 밀도가 뛰어나 스피커의 음향판이나 밀폐용 개스킷 등 첨단 소재 개발에 얼마든지 응용이 가능하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한지를 관광상품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근 원주시는 총 141억여원을 들여 2009년 말까지 한지 테마파크를 완공키로 하고 착공식을 가졌다. 앞으로 한지의 재배부터 생산과 가공의 모든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역사박물관과, 한지를 직접 만들어 보는 복합 체험형 공간을 조성해 전국적인 가족단위 문화관광명소로 만들 계획이다.
국립중앙박물관도 우리 겨레가 창조한 과학기술을 더욱 발전시키고 첨단기술이 접목된 연구결과를 과학관 전시에 활용하기 위해 ‘겨레과학기술응용개발사업’을 추진한다. 한지를 비롯해 숯·천연염색·천연접착제·고유금속소재·무기안료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윤용현 연구관은 “철저한 분석과 연구를 통해 대량생산을 위한 기술개발에 노력하고 첨단기술과의 결합을 통해 선조들의 과학적 슬기를 세계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권상희기자@전자신문, shk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