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전력이 높은 제품에 불이익을 주기 위한 ‘대기전력 경고라벨제’ 시행을 앞둔 가운데, 정부가 방송 수신용 셋톱박스를 중점 관리 대상으로 지적한 것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친환경 제품 개발 유도를 위한 취지를 인정하지만, 방송과 셋톱박스업계에 대한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지 않은 채 진행됐다며 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3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에너지관리공단은 지난 29일 공청회를 열고 오는 8월 시행될 ‘대기전력 경고 라벨’의 대상 품목으로 PC·셋톱박스·모니터·프린터·TV·복합기 등 6개 품목을 지정했다. 이 중 대기 중 전력소모량이 많은 셋톱박스를 중점 관리 대상으로 지목했다.
공단 측은 “위성방송·디지털케이블TV 등의 셋톱박스는 사용하지 않을 경우에도 서버와의 통신에 20∼40W의 대기전력을 사용해 국내 유통되는 셋톱박스의 90%가 라벨 부착 대상이 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매출의 90%가 해외에서 발생해 대부분의 제품은 이미 선진국 기준에 맞췄다고 반박했다. 한 셋톱박스 업체 관계자는 “유럽이나 일본에 수출하는 제품은 대기 전력을 이미 5∼10W 이하로 구현해 공급 중이며 이보다 더욱 엄격한 기준에 맞춰 제품을 설계했다”고 말했다.
업체들은 대기전력 문제는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고객의 요구에 따라 맞춰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셋톱박스는 방송사업자(SO)가 구매해 제공하는 방식이 많은데 이럴 경우 제품의 규격을 SO 측이 제시하는 기준에 맞춰 공급한다는 것이다. 업체 측은 “국내 방식은 휴지 상태에서 업그레이드 등을 실시하는 기술을 채택해 대기 시간에도 전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며 “국내 방송 환경은 도외시한 채 셋톱박스 업체만 문제시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항변했다.
더욱이 국내에서는 SO 측이 일정 가격에 맞춰 제품 공급을 요구해 셋톱박스 업체는 저가 제품을 공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셋톱박스 대기전력을 줄이려면 방송 기술 개선이나 SO 측과의 협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공단 측은 “공단이 관여하는 것은 방송 쪽이 아니라 제조업 쪽이어서 셋톱박스 업체와 얘기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기준 미달제품 경고’ 라벨은 8∼15W의 대기전력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가전 기기에 소비자가 볼 수 있도록 스티커를 붙여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이 제도는 지난해 12월 27일 에너지이용합리화법이 개정 공포됐고, 공포 8개월 뒤에 실시된다. 그동안 절전 제품에 대해 인센티브 차원에서 에너지 절약 마크를 붙일 수 있게 했지만 불이익을 주는 것은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김규태·최순욱기자@전자신문, s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