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노인 환자가 한 명 있었다. 당시 수개월 동안 신경을 쓰고 마음을 졸인 뒤 머리가 맑지 않고 어지러우며 속이 답답하고 양쪽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 같다는 증상을 호소했다. 나는 상중초(上中焦)의 기체(氣滯)와 전반적인 기허(氣虛)로 보고 탕약과 침 치료를 해나갔다.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상중초의 기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기운의 흐름을 상중하로 보았을 때 기운이 아래로 내려오지 못하고 윗쪽과 중간에서 막혀 있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상중(上中)쪽인 머리, 가슴과 배에서는 갑갑함과 긴장이 일어나고, 아래(下)쪽은 허(虛)해져서 다리에 힘이 빠질 수 있다.(간단히 설명했지만 실제 진단과 치료에서는 세부적으로 많은 미묘한 요소가 감지되고 고려된다.)
이 환자가 치료를 받으면서 호전이 적잖이 되다가 신경을 한 번 바짝 쓰고 난 뒤 갑자기 증상이 심해졌다. 바뀐 상황에 맞춰 처방을 새로 내고 혹시 더 빠른 치료가 가능할까 싶어 고수인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통화 후에 훨씬 간명하고 뚜렷한 처방을 낼 수 있었다. 그 약을 복용한 환자는 2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일어나 앉더니 활기차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원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더욱 정확한 병리에 근거해서 간과(看過)한 것을 보강하고 필요 없는 약은 빼면서 처방의 효과는 극대화됐던 것이다. 그 후 일주일가량 마무리 치료를 하고 종결할 수 있었다.
한의학에서 하수(下手)는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과 환자의 말에 현혹되기 쉽다. 반면에 고수(高手)는 증상을 만드는 기운의 움직임을 잘 파악한다. 하수는 기술적인 요소에 많이 집착을 하지만 고수는 정확하고 근본적인 진단을 통해 과불급(過不及)이 없는 적절한 기술만을 구사한다. 고치기 어려운 환자일수록 고수의 손길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고수만이 환자를 고치는 것은 아니다.
환자 쪽에서 의사를 선택할 때 성심을 다해 진료하고 진료의 내용을 환자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며 진료하는 의사를 선택한다면 바람직하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