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 다음의 한국의 차세대 먹거리는 무엇인가’ 지난 수년 동안 계속 제기돼온 절박한 질문이다. 실마리를 어디에서 풀어야 할까. 정답은 ‘기술 역사’에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항상 주요 기술이 신제품을 만들고, 신제품이 산업군을 이루며 전체 산업을 주도해왔다. 청동기·철기는 농수산·목축업을 일으켰고, 기계공업기술은 증기기관의 발명을 통한 산업 혁명으로 이어졌다. 또 전기 발명은 수력, 화력에 기초한 전기산업과 군수산업, 기계화공 산업을 이끌었다. 그리고 마침내 1948년 트랜지스터 발명과 1959년 집적회로 개발로 창대한 전자산업이 부상했다. 기술이 먼저 앞서고 주요 산업이 등장하는 역사의 반복이 계속돼왔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떤 기술이 발달해 주요 산업으로 부상하는 역사의 발전이 반복될까. 전자 산업 트렌드를 살펴보자. 1980년 이후 전자산업은 경박단소·초고속·고집적·대용량·고기능화로 발전해왔고, 복잡한 하드웨어 부품을 쉽게 연결해 쓸 수 있도록 해주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부흥도 가져왔다. 그러나 2008년 지금 전자 기술은 신소재 활용과 새로운 정밀기술을 접목해도 전자의 물리적 특성을 이용할 수 없는 임계치에 와 있다. 전자산업의 목표인 경박단소·초고속·고기능화를 이루지 못할 만큼 한계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기술변화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새로운 돌파구가 등장해야 할 시점이며, 그것이 바로 광자(photon)에 바탕한 신기술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광자를 전자와 비교해보면 기본 물리적 성질이 완전히 다르다. 동일 공간에 여러 개의 광자가 동시에 존재해도 에너지 손실이 전혀 발생하지 않으며 정지질량도 제로다.
광자를 이용해 신호전달이나 신호처리를 하면 전자기술의 한계에 이르렀던 고집적화나 초고속·대용량화 등 성능개선을 위한 새로운 돌파구가 열리게 된다. 이미 통신에서는 광통신이 상용화돼 오늘날 인터넷의 기본 인프라 통신망으로 자리 매김했다. 광자를 이용한 신호처리와 통신기술 비중이 점점 높아져 가고 있다.
선진국 실험실에서는 광자를 응용한 신기술들이 전자기술과 접목, 신개념 아이디어 제품이 다양하게 구현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전자 제품군에 광자·광학기술이 접목된 광전자제품이 선보이고 있으며, 올초 미국 가전제품전시회(CES)에서는 디스플레이에 신개념의 광자기술들을 적용, 성능을 대폭 개선한 제품이 등장했다. 아직 가격이 비싸지만, 광자에 대한 기본 물리적 특성이 전자에 비해 너무도 많은 장점들이 있기에 향후에는 광자 기술에 바탕한 신기술이 속속 등장할 것이며, 새로운 산업군도 형성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강조해야 할 것이 있다. 이제 주요 산업을 이끄는 제품들은 어느 한 가지 신기술만 가지고는 절대로 좋은 제품으로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광자를 처리하는 기술들은 전자, 재료, 화공, 정밀가공 등 많은 기술이 새로운 개념으로 융합돼야 부가가치 높은 경쟁력 있는 제품이 된다는 점이다. 반도체 그 다음 광전자 시대를 기대해보자.
김태진 tjkim3@yahoo.com
※필자는 현재 고해상도 프로젝터용 멤스미러 디스플레이 디바이스를 개발하고 있는 벤처 회사인 미라디아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실리콘밸리 K 그룹의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