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이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은 휴대폰 원천기술인 CDMA 개발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퀄컴이다. 이 회사 이름은 시내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샌디에이고의 가장 큰 경기장의 이름이 퀄컴스타디움이며 지역 명문대인 UCSD에도 퀄컴의 설립자이자 회장의 이름을 딴 제이콥스(Jacobs) 공과대학이 있다. 퀄컴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산업과 함께 샌디에이고 경제를 이끌고 있는 것이 바로 생명과학산업이다.
샌디에이고 지역 생명과학기업 협의회 BIOCOM에 따르면 생명기술, 의료장치, 진단장비 등 생명과학 분야에만 550여개의 기업이 있으며 종업원 수만도 약 4만명에 이른다.
이 때문에 최근 벤처캐피털 유입 자금 규모도 연간 20억달러 규모로 미국에서 실리콘밸리 지역에 이어 두 번째로 커졌다. 정부의 관심도 대단하다. 미국 연방정부는 매년 약 8억달러의 막대한 연구개발(R&D) 자금을 지역 기업에 지원하고 있다.
바이오 산업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연간 85억달러로 추산된다. 세계 3위 생명 기술 기업인 바이오젠, 미국 혈액진단장비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젠-프로브, 전 세계 생명과학 실험실에는 빠짐없이 납품한다는 인비트로젠 등이 샌디에이고에 거점을 두고 있다. 또 파이저, 머크, 존슨앤드존슨 등 대형 바이오 기업도 이곳에 연구실을 설립,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샌디에이고에 왕성한 생명과학산업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미국의 경제 싱크탱크인 밀켄연구소가 최근 바이오클러스터의 현황을 자세히 연구 분석한 자료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연구소는 성공적인 클러스터를 위해서 지식 및 창의성을 자본화하는 ‘혁신 파이프라인’과 아이디어로부터 제품까지의 ‘시장화 과정의 효율성’이 필수적인 요소라고 전제하고 미국 각 지역의 바이오클러스터를 R&D 투자, 모험자본, 인적자원, 생명기술인력, 경제효과로 나눠 비교했다. 그 결과 샌디에이고는 R&D 투자, 모험자본, 경제효과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여 종합 1위를 차지했고, 보스턴, 새너제이 등과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산학 협력 관계는 샌디에이고의 가장 큰 장점이다. 샌디에이고 생명과학기업의 3분의 1이 학교에서 출발, 분사 형태로 기업화가 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성장한 기업들은 지역 생명과학 연구인력의 40%를 고용한다. 특히 지역 연구소와 정보 기술이 융합돼 시너지를 내는 일이 많다. UCSD와 스크립스연구소(SRI)를 중심으로 수행되는 생명과학연구가 대표적인 사례다. 두 기관은 의생명 연구자들에게 다양한 컴퓨팅 자원, 도구 및 기술을 제공하는 미국 국립보건원의 NBCR(National Biomedical Computational Resource) 프로젝트, 미국과학재단의 단백질 데이터뱅크 사업(Protein Data Bank) 등을 수행하고 있다.
민간 기업 차원에서도 바이오와 IT의 시너지를 노린 프로젝트가 많다. ‘해양미생물연구를 위한 정보통신기반 인프라 프로젝트(CAMERA)’가 주요 사례다. 이 사업은 인텔 창업자인 골든 무어 박사가 설립한 무어 파운데이션에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UCSD 존 우리 부총장은 이 같은 샌디에이고의 분위기를 ‘디지털화로 완성되는 게놈 의학(DeGeM:Digitally Enabled Genomic Medicine)’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요약한다. 그는 “DeGeM의 핵심은 정보통신기술의 진보를 이용하여 3PM-맞춤의학(personalized medicine)·예방의학(preventive medicine)·예측의학(predictive medicine)-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인간의 건강관리를 혁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오와 IT의 결정적인 만남, 이것이 샌디에이고의 쾌속 성장의 비결이다.
이지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책임연구원·UCSD 초빙교수 jysoo@kist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