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CEO] 김하철 일진 반도체 사장

[파워 CEO] 김하철 일진 반도체 사장

 ‘귀공자.’ 김하철 일진반도체 사장(47)을 처음 만난 사람들이 으레 갖는 첫인상이다. 말쑥한 외모에 예의도 바르고, 경력마저 화려하다. 중견 그룹 오너의 맞사위까지 귀공자의 발자취 그대로다.

 인생의 굴곡이 이렇게 없을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 어느 것도 공짜는 없었습니다. 끊임없는 노력과 준비의 대가지요.”

 

 # “내 자신에게 시련을 주고 싶었다”

 서울대 화학공학과 81학번인 그는 졸업과 동시에 미국 버지니아폴리테크닉주립대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만 27세의 나이에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땄다. 세계 최대의 석유화학 기업인 엑손모빌에서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전 세계 시가총액 1위의 거대 기업에서 순탄한 삶을 살던 그는 탈출을 감행했다. 바로 엔지니어의 길을 버리고 마케팅 전문가로 거듭나기 위해 코닝으로 이직한 것.

 “마케팅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영업까지 아우르는 최고의 디스플레이 전문가가 되기 위해 시련에 나를 맡겼습니다.” 

 # 직업까지 바꾼 필요가 있었을까

 “당시엔 엔지니어로서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디스플레이 산업에 대한 관심과 마케팅을 병행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지요. 그래서 코닝의 신사업 추진 담당 엔지니어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편하게 살겠다는 생각보다는 시련을 통해 나를 단련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소비자를 이해하는 연구개발 방법과 기술이 바탕이 된 마케팅을 접목하며 탁월한 전문가로서 기반을 잡기 시작했다. 코닝에서 근무한 2년 동안 LCD 핵심 부품인 퓨전 글라스 제조사업부에서 일하며 삼성코닝과도 협업했다.

 이후 램리서치 아시아 총괄을 거쳐 후지쯔의 미주지역 마케팅 총괄까지 역임하며 그는 실리콘밸리의 돋보이는 한국인 마케팅 리더로 성장했다. 세계 정상급 LCD 장비업체인 램리서치와 세계 최초로 PDP를 상용화한 후지쯔에서의 경험은 디스플레이 산업에 대한 가능성을 확신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이렇게 실리콘밸리에서 돋보이는 테크노 리더로 자리를 잡아가던 그는 또 한 번 변화를 시도했다. 2000년 고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정상에 오르기 위해 당신이 필요하다”

 후지쯔에서 미주지역 PDP 마케팅을 총괄하던 그를 어느날 김순택 삼성SDI 사장이 찾았다. 신사업을 추진하면서 디스플레이 마케팅 책임자를 물색하던 삼성SDI가 그를 영입한 것이다.

 “삼성SDI의 목표는 PDP 시장에서 1등을 하는 것이오. 그러기 위해 당신이 꼭 필요합니다.”

 자신을 영입하기 위해 미국까지 직접 날아온 김순택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곧바로 한국행을 결심했다. 삼성SDI의 전폭적인 지원과 투자 확대 약속에 그는 엔지니어의 길을 버렸듯 14년여간의 미국 생활도 미련 없이 접었다.

 38세의 나이에 삼성SDI 최연소 임원으로 고국으로 돌아왔다. 삼성SDI에서 줄곧 마케팅을 맡은 그는 상무까지 오르며 디스플레이 시장의 트렌드를 주도했다.

 “마케팅 책임자라면 누구나 시장을 예측합니다. 하지만 그 예측 때문에 시장이 다른 방향으로 갈 때가 있습니다. 이런 메커니즘을 마케팅 관점에서 이해하고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삼성SDI에서 그런 역할을 했고 마케팅 기법을 고도화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가 영업 및 마케팅을 주도하는 동안 삼성SDI는 몇 번의 부침이 있었지만 PDP 시장 세계 정상에 올랐다. 김순택 사장이 그를 영입하기로 한 결정이 옮았음을 입증한 순간이었다. 물론 그 혼자만의 공로는 아니지만 기술을 이해하는 마케팅 전문가의 저력을 보여줬다. 나중에는 디스플레이 전문 시장조사기관들이 그의 전망을 토대로 보고서를 만들 정도였다.

 삼성SDI에 있을 당시 그는 뛰어난 프레젠테이션으로도 여러 번 주목받았다. 처음 보는 사람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공감대를 이끌어 내고 설득하는 데 탁월하다는 평가다. 그는 시장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가장 좋은 길을 알고 실천할 수 있는 재능도 갖추고 있다. 

 # 이제는 CEO로 또 다른 승부 나서

 “일진디스플레이로 옮기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CEO로서 한 회사를 책임지고 발전을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2006년 8월 일진디스플레이의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또 한 번의 도전이다. 김 사장은 “일진에서 저를 필요로 한 것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도 (회사를) 발전시키는 것이 회사나 나로 봐서도 좋다고 판단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2007년 3월 사장에 오른 그는 곧바로 휴대폰 화면을 20인치까지 확대할 수 있는 나노프로젝터를 선보이는 등 테크노 마케팅 CEO의 위력을 발휘했다. 디스플레이 소재에 대한 엔지니어적 감각과 시장을 예측하는 마케팅 전문가의 시각이 결합된 결과다.

 작년에는 일진그룹 내 발광다이오드(LED) 연구개발 역량을 모아 설립한 일진반도체 사장도 겸하며 일진그룹의 신성장동력 발굴을 진두지휘한다.

 그는 아직은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일진그룹의 개혁을 이끌고 있다. 이를 위해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바로 커뮤니케이션. 직원 간은 물론이고 상하 지휘체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바로 옆에 있는 직원 간에도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때가 있습니다. 업무 시너지 효과는 바로 커뮤니케이션으로 시작됩니다. 이를 활성화해 활력 있는 회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LED는 시작에 불과하다”

 그의 얼굴은 과거보다 미래를 얘기할 때 더 밝았다. 바로 2010년 11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LED 시장에서 확고한 원천기술을 확보했다는 자신감 덕분이다.

 일진반도체는 최근 5파장 백색 LED의 양산에 돌입했다. 세계 최초로 개발된 이 제품은 블루·그린·레드 3파장에 옐로우·시안 2종의 파장을 첨가해 자연색을 표현하는 연색성 지수를 97까지 높였다. 태양광(100)에 거의 근접한 수치로 자연색 표현에 획기적인 도약대를 만들었다. 더욱이 일본 업체도 아직 상용화하지 못한 기술이다. 20여건의 국제 특허까지 출원한 상태여서 기술 선점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된다.

 두께도 1㎜ 벽을 돌파, LCD TV의 슬림화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LED 제품군 중 백색 LED의 성장세가 연평균 50% 이상으로 가장 빠릅니다. 국내 LCD TV 업체들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백라이트유닛(BLU)용 광원으로 채택이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기대해도 좋습니다.”

 그는 올해가 첫해이니만큼 300억원이라는 보수적인 매출 목표를 공개했지만 내심 더 욕심을 내는 눈치다. 월생산량도 패키지 기준으로 3000만개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그는 일진반도체가 LED 시장의 후발주자기는 하지만 개발력과 자본력을 갖춰 충분히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LED가 끝이 아니라는 의지도 강하게 피력했다.

 “5파장 백색 LED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시장이 주목하는 신기술을 계속해서 선보일 것입니다.”

 엔지니어에서 마케팅 전문가로, 이제 일진그룹의 혁신을 이끄는 테크노 CEO로 변신을 거듭한 김하철 사장. 그의 길이 어디까지 뻗어 나갈지 당장 가늠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정보기술(IT) 소재 분야에 새로운 파워 CEO가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김하철 사장은>

 1961년생. 서울 경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나왔다. 미국에서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10여년간 석유화학(엡손모빌), 디스플레이 소재(코닝), LCD 장비(램리서치), PDP(후지쯔) 등 다양한 업체를 거치며 엔지니어링과 마케팅 경험을 쌓았다. 2000년 삼성SDI 최연소 임원으로 스카우트된 이후 2006년까지 PDP 영업과 마케팅 상무를 역임했다.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맏사위기도 한 김 사장은 일진디스플레이와 일진반도체, 일진DSP 사장을 겸임한다. 이 회사들은 LED 칩용 잉곳 생산, LED 패키징, 휴대폰용 소형 프로젝터 등 일진그룹의 신성장동력을 담당하고 있다. 일진그룹의 미래가 그에게 달려 있는 셈이다. 골프와 스키, 수영, 테니스도 수준급인 만능 스포츠맨이다.

 양종석기자@전자신문, js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