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한국 최초 우주인 고산씨가 식물생장 비교실험을 수행할 벼·콩·무 등 식물종자 11종이 지난 5일 먼저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보내졌다. 이 종자들은 ISS 내에 2개월간 보관되다 고산씨가 과학실험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할 때 가져와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팀에 전달할 예정이다.▶하단 관련기사 참조. 지난 50여 년 동안 많은 식물이 우주로 떠나 실험대에 올랐다. 우주에서도 식물은 싹을 틔우고 성장한다. 그러나 지상에서와는 다른 형태를 띄게 된다. 우주는 태양복사에너지·햇빛·방사선 등 식물이 자라는데 영향을 미칠 변수가 많다. 가장 큰 변수 가운데 하나는 중력이다. 식물은 지난 40억년 동안 중력이 작용하고 있는 지구에 맞게 계속 진화해왔다. 원래 놓인 제각각의 방향과는 상관없이 싹은 하늘을, 뿌리는 땅을 향해 자란다. 빛이 없는 곳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 이런 성질을 식물의 ‘굴중성’(gravitropism)이라 부른다. 식물이 중력을 인지하고 성장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다.
식물의 뿌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길쭉한 방처럼 생긴 세포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각 세포에는 전분을 포함한 색소체인 녹말과립이 들어 있다. 이 녹말과립은 세포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어서 세포에게 아래쪽 방향을 알려준다. 이런 녹말과립 덕분에 식물은 중력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우주에는 중력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녹말과립이 세포 밑바닥에 있지 못하게 되고 세포 전체로 퍼진다. 이렇게 되면 식물은 뿌리를 내릴 방향을 알 수 없어 더 이상 뿌리는 아래로, 줄기는 위로 자라지 않게 된다. 그래서 줄기와 뿌리가 사방으로 뻗으면서 자라게 된다.
또 식물 전체의 성장뿐만 아니라 식물을 구성하는 세포의 성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세포벽이 얇아지는 현상이 그 가운데 하나. 식물세포는 동물세포와 달리 세포벽이 있다. 세포벽은 뼈가 사람의 몸을 지탱하는 것처럼 식물의 세포를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중력이 거의 없는 우주에서는 세포를 지탱할 필요가 없어 세포벽이 점점 얇아지게 된다.
고산씨가 할 실험은 우주선 육종(space breeding)을 통한 식물자원 창출의 목적도 있다. 우주선과 우주정거장에는 우주 공간에서 날아오는 중입자와 태양에서 오는 양성자 등 다양한 우주방사선이 존재할 뿐 아니라 진공, 희박한 공기, 낮은 자기장 등 지구와는 다른 환경조건을 가지고 있다.
지구 환경에 수억년 동안 적응 진화해온 생명체들이 이러한 우주환경에 노출될 경우 돌연변이 등 생리 및 유전적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데, 이러한 현상을 이용하여 새로운 식물 유전자원을 개발하는 것을 우주선 육종이라고 부른다.
원자력연구원 강시용 박사는 “지난 1999년부터 우주정원을 가꾼 중국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수확한 씨앗을 지구에 심은 결과, 야구 방망이만한 오이와 비타민A 함유량이 더 높은 토마토를 얻었다”며 “우주의 무중력과 태양 복사로 식물의 DNA가 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앞서 2006년 9월 중국이 발사한 과학기술 실험용 우주선 스젠(實踐) 8호에 우리나라 종자 8종 200g을 탑재하여 1차 실험을 한 바 있다. 당시 우주공간을 유영한 뒤 돌아온 종자 가운데 콩 등 일부 식물은 초기 생장이 억제되는 현상을 확인했으며 자생란인 ‘석곡’의 경우 몇 가지 잎 무늬 변이체가 발견됐다.
권상희기자@전자신문, shk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