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대 전자공학과에 재학 중인 김지환씨(가명·21)는 수강신청을 앞두고 고민이 많다. 필수인 공학인증프로그램(ABEEK) 때문에 ‘듣고 싶은’ 수업보다는 ‘들어야 하는’ 수업이 늘었다. 게다가 지난 학기에 공학인증제 필수 이수과목으로 생긴 ‘공학경영’은 실망 그 자체였다. 담당 교수는 공대생에게 어려울 법한 부분은 대충 가르쳐 차라리 경영학을 복수전공하는 게 낫다 싶을 정도였던 것.
지난 2001년 공학 교육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도입한 공학교육인증제가 ‘인증을 위한 인증’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학생·교수에게 과중한 커리큘럼과 서류업무라는 짐을 지우고 있어 과연 누구를 위한 인증이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국공학교육인증원(이사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따르면 올해로 도입 8년째를 맞는 공학교육 인증은 지난해까지 전국 공과대학의 4분의 1 수준인 38개 대학에서 도입하는 등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현재 전국 각 대학에서 316개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이렇듯 양적으론 성장하고 있지만 질적 수준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인증 수업 증가는 가장 큰 불만사항. 필수교양·전공 과목과 졸업 소요 학점이 급증했다. A대학은 전체 140학점 중 19학점을 제외한 모든 과목이 전공과 연계된 기초·필수 부문이다. 졸업학점도 10여학점 가까이 늘었다. A대학 화학공학과에 재학 중인 이지헌씨(가명·23)는 “전공만 따라가기에도 벅차다”며 “동아리 등 대학생활의 다양함은 다른 나라 이야기다. 이러다 정말 ‘공돌이’ 되겠다”고 비판했다.
교수들의 불만도 크다. B대학 기계공학과 교수는 “연구·교육에만 신경 써도 정신이 없는데 거기에 문서업무까지 늘었다”며 “대부분의 대학이 행정업무 지원이 없는 상태로 과중한 문서작업에 대한 해결책 없이는 인증제의 원래 취지를 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인증 심사 절차도 문제다. 인증원 측은 학생 면담을 통해 철저히 심사한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는 실상과 다르다. 한 공대 관계자는 “설명회는 요식행위고 면담은 더욱 심하다”며 “실사 한 달 전 미리 성적순으로 학생을 잘라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면접 연습을 시킨다”고 설명했다. 인증원이 제시하는 커리큘럼에 맞춰 갑자기 과목이 개설 또는 폐강되기도 한다. 기초·필수교양 수업이 공대에 맞춰 진행되다 보니 인문·경영과목에서 공대생을 위한 수업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공학교육인증제가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선 현재 양적 성장 위주인 육성 방향을 ‘질적 성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송태경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 교수는 “공학인증제 도입 취지는 모두가 충분히 공감하지만 운영이 문제”라며 “교수들의 연구와 교육을 위해서라도 현실적인 행정지원과 문서작업 부담을 덜어주는 시스템의 확립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성현기자@전자신문, ar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