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5년 결산](5)통방 융합, 너무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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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통신 산업진흥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독임제 요소가 필수적이다. 진흥과 규제 기능을 통합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정보통신부)

“직무상 독립성을 보장받는 합의제 행정기관이 방송과 통신에 관한 총괄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방송위원회)

“방송영상을 포함하는 콘텐츠 산업 진흥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 (문화관광부)

 방송통신 융합 행정기구 탄생이 왜 이토록 늦었을까. 시계를 2006년 12월로 되돌려 국무조정실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이하 융추위)로 찾아가 보자.

 융추위 탁자 위에 정통부와 방송위를 일대일로 통합하기 위한 기구개편안이 올라왔다. 정통부·문화부 등 관련 중앙행정기관별 주장이 탁자 위로 모인 것. 행정자치부는 공식 방침이나 주장을 펴지 않았으나 중앙행정기관 조직 권한자로서 ‘정통부 우정(郵政) 기능 이관 여부’에 시선을 고정했다.

 시계를 조금 더 되돌려 2006년 7월로 가면, 안문석 고려대 부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융추위가 얼굴(출범)을 내민다. 융추위는 그해 8월 제1차 추진위원회를 열어 10년 해묵은 방송통신 융합 논쟁을 끝낼 마침표인 행정기구개편(정통부+방송위) 22개 의제를 확정했다. 이어 10월 제4차 융합추진위원회를 통해 기구개편 방안을 의결했다.

 ‘직무상 독립이 보장된 대통령 소속 합의제 행정기관인 위원회’가 다수 안으로 의결됐다. 독임제 요소도 포함됐다. 따라서 방송통신 기능 전반을 통합해 종합적·체계적 정책 수행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따라붙었다. 위원 5인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전원을 상임화하기로 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처럼 상임위원 여야 비율을 3 대 2로 하자는 의견도 제시됐으나 대통령 임명제가 다수였다. 또 △규제 집행기능만을 합의제 위원회에 맡기고 정책(법령 제·개정권)과 진흥기능을 독임제 행정부처에서 수행케 하자는 ‘순수 규제위원회’과 △규제·정책기능을 합의제 위원회로 통합하되 진흥기능을 독임제 행정부처에 맡기자는 ‘규제정책위원회’ 방안이 소수 안으로 채택됐다.

 그러나 융추위 의결안은 국무조정실 쓰레기통에서나 찾을 수 있었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별 주장과 방향을 담은 기구통합안들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관련 중앙행정기관별 입장과 주장이 의원입법안에 스며들다 보니 민간 단체를 동원해 반대진영 의원발의를 가로막는 등 복마전 양성을 빚기도 했다. 결국 국회 안에 방송통신특별위원회가 만들어지고 나서야 다수 의원 발의안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지만 특위 안에서도 각계 의견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간 갈등과 충돌은 여전했다.

 이후 시계가 2008년 2월 20일 오후 정부조직개편 여야 합의시점에 이르렀을 때, ‘방송통신위원회’는 위원 5인제 대통령 직속기구로 윤곽을 잡았다. 융추위가 만든 골격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 여야 위원 3 대 2 구조도 얼마간 예측됐던 정치적 거래로 풀이된다.

 “방송과 통신은 물론이고 IT·콘텐츠 등이 한 개 생태계를 묶이는 ‘디지털 융합’이 사회 전반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가치 사슬(밸류 체인)을 새로 짜야할 때인 거죠. 하지만 정치적 배경과 목적은 디지털 융합시대 흐름에 상대적으로 둔감했습니다.”

 모 대학교수가 말하는 방송통신 융합 행정기구 통합과정의 비애다. 그는 “결정(정부조직개편에 따른 방통위 설립)도 정치적 결단에 힘입어 이루어졌다”며 “앞으로 방통위가 시장과 산업이 바라고, 소비자와 시청자가 바라는 성장능력·공정성·미래 등을 정책에 담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방통위가 제대로 걷기 위한 아킬레스 건은 민간인에서 공무원으로 신분이 바뀌는 방송위원회 직원들”이라며 “그들이 방통위 안에서 소외되거나 도태된다면 방송 공정성도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은용기자@전자신문, eylee@

◆산업은 빠르고 정치는 늦고

 지난 2006년 7월과 9월 하나로텔레콤과 KT는 각각 ‘하나TV’와 ‘메가TV’를 선보였다. 통신 네트워크를 활용한 새로운 비즈니스의 시도였다. 어느 법령에도 규제받지 않는 새로운 모델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IPTV를 규제하려 했다. 통신법, 방송법 소관 부처는 서로 자기가 IPTV를 규제해야 한다고 했다.

  2007년 2월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이하 융추위)가 만들어지면서 IPTV 도입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업체에서 ‘TV포털’ ‘IPTV’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시연한 지 3년여가 지난 2007년 6월이 돼서야 국회 방송통신특별위원회에서 IPTV도입법안이 발의됐다. 이후 11월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안’이 방통특위 전체회의 통과했다. 그해 12월 말 대선을 앞두고 허겁지겁 국회 본회의를 통과시켰다. 이미 IPTV 가입자 수십만명이 넘어선 뒤였다. 법 제정이 늦어지자 당시 국회에서는 참여정부보다 차기정부에서 차근차근 정리하는 게 순리라는 주장을 제기할 정도였다. 서비스 일정상 하루가 급한 사업자 처지에선 분통 터질 일이 아닐 수 없다.

 IPTV가 통신과 방송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신규 IT 서비스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가 IPTV가 방송인지 통신인지를 두고 지루한 논리전을 전개하는 등 부처별·정파별·의원별로 첨예하게 이해가 엇갈리며 갈등의 확대·재생산이라는 악순환을 거듭했다. 방송위원회는 IPTV가 방송 영역이므로 방송법으로 다스리면 모든 일이 풀린다고 주장했고 정보통신부는 IPTV가 방송과 통신의 융합 결과인만큼 새로운 법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맞섰다. 이런 가운데 융추위도 지나치게 정치논리에 치우쳐 안팎의 비난에 시달리며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업체들은 IPTV법에 대해 아쉬움이 크다. 시행 주체가 모호한데다 하위 시행령 등을 정통부와 방송위가 공동으로 마련하도록 하는 등 불완전한 법률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지적은 적중했다. 새해 들어 정통부와 방송위가 시행령 제정에 착수했지만 여전히 시장지배력 전이 방지와 망 동등접근 등 핵심 사안에 대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IPTV는 초고속 인터넷망을 이용해 주문형비디오(VoD)·인터넷 등 양방향 통신서비스와 실시간 방송 등을 제공하는 통신·방송 융합서비스다. 이용자는 PC가 아닌 TV는 물론이고 멀티미디어 기기를 편리한 시간대에, 원하는 서비스 형태로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이처럼 IPTV는 우리 삶을 바꿔놓을 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적으로도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온다.

 콘텐츠를 담아보낼 망을 고도화하는 작업이 수반되고 스토리지·셋톱박스·스위치 등 다양한 부가 장비산업이 육성된다.

 콘텐츠 제작자는 소비자에게 다가갈 무한대 채널을 확보함으로써 하나의 콘텐츠로 엄청난 수익을 거둘 수 있다. IPTV가 신수종산업인 이유다. IT 산업 특성상 서비스를 조기 상용화에 의한 초기 시장 형성으로 관련 산업을 활성화해야만 세계적인 경쟁력 확보가 가능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미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막대한 기회비용 손실이 있었던만큼 진입장벽을 낮추고 규제를 최소화, 다수의 IPTV 사업자 진입을 허용함으로써 유료 방송 시장에 경쟁 체제를 극대화시켜야 하는 과제는 새 정부의 몫이다.

  김원배기자@전자신문, adolf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