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블루칩, 결국 저작권 보호가 관건이다.’
새 정부의 대표 정책 과제로 소프트웨어· 디지털 콘텐츠와 같은 무형의 저작물과 관련한 권리 보호 문제가 급부상했다. 저작권이 당면 과제로 부상한 데는 산업 구조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20세기는 산업 사회로 경제적인 부가가치가 대량 생산이 가능한 공장에서 만들어졌다.
21세기는 지식 기반 사회다. 인재와 아이디어가 부가가치를 만드는 시대다. 결국 무형의 소프트 경쟁력이 국가의 승패를 좌우할 수밖에 없다. 이미 문화 콘텐츠와 소프트웨어는 21세기 신성장 분야 즉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이미 선진국은 지식을 창출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콘텐츠와 소프트웨어 분야에 적극적인 투자에 나선 상황이다.
이는 시장 규모와 성장 속도 면에서 소프트 산업이 다른 산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빠르기 때문이다. 2005년 기준으로 제조업 가운데 세계 시장 규모가 가장 큰 산업은 가전으로 2643억달러에 달했다. 이어 반도체 2346억달러, 휴대폰 1300억달러, 우리나라가 강점인 메모리 분야는 498억달러였다.
이를 추월한 게 문화 콘텐츠 분야다. 콘텐츠 분야에서 가장 시장 규모가 큰 출판은 2005년 3901억달러에 달했다. 이어 방송이 3186억달러로 제조업 시장 규모 1위인 가전 보다 500억달러 가량 앞섰다. 우리 나라가 강점인 게임도 605억달러로 반도체 시장 규모를 넘어섰다. 게다가 문화 콘텐츠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제조업은 평균 이익률이 ‘한 자리 수’ 수준이며 이마저도 해마다 줄고 있다. 콘텐츠 분야는 평균 이익률이 30%를 넘어선다.
지난해 국내 게임업체의 영업 이익률은 연평균 35∼40%에 달했다.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은하도시 포럼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산업 구조가 제조 기반에서 지식 기반으로 이어 콘텐츠 기반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라며 “21세기는 문화 산업에서 각 국의 승패가 갈라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소프트 강국 건설을 위한 열쇠가 바로 ‘저작권’이다. 저작권은 쉽게 말해 다양한 유·무형 창작물의 권리다. 소프트웨어에서 출판·게임·음악 등 다양한 콘텐츠까지 이를 생산한 기업과 사람의 권리를 말한다. 저작권이 중요한 배경은 저작권이 결국 시장과 산업 활성화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받을 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올 것이고 이는 산업과 시장을 키울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저작권 보호 수준은 선진국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이다. 이미 ‘불법 복제’는 산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지 오래다. 콘텐츠의 불법 복제 거래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한참 넘어섰다는 비판 여론이 높다. 영화에서 음악·출판·게임까지 콘텐츠를 둘러싼 ‘검은 뒷거래’로 시장과 산업이 병들고 있다.
이름 뿐인 ‘인터넷 강국’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저작권보호센터가 지난해 12월 발간한 ‘2007 저작권 침해 방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한 해 동안 음악은 185억4413만 곡, 영상물은 114억3483만 편, 출판물은 100억456만 편이 불법 유통됐다. 불법 복제품 시장 규모는 2조190억원으로, 합법적인 문화 콘텐츠 시장 규모인 4조5370억원의 45%에 달했다. 특히 음악 시장은 불법 시장이 4567억원으로, 합법적인 시장 규모(3708억 원)보다 더 큰 기형적인 구조였다.
이는 그나마 시장 질서가 잡혀 있는 소프트웨어(SW) 분야도 마찬가지다. 정보통신부와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위원회가 발표한 ‘2007년 국내 SW복제 현황’에 따르면 국내 기업 PC 한 대당 SW 불법 복제율은 25.03%에 달했다. 업종별 SW불법 복제율은 제조(32.39%), 유통(27.12%), 건설(25.97%) 순으로 사실상 모든 분야에서 전방위로 불법이 자행되고 있다. 가정의 복제율도 48.41%에 달해 가정에서 사용하는 SW 두개 중 하나는 복제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번 결과에서는 정품SW 구매 의사를 밝힌 응답자가 2006년 28.1%에서 2007년 22.3%로 줄어든 점은 SW가격에 대한 부담이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나 복제율이 쉽게 줄어들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미국 재산권연대가 최근 발표한 국가별 지적재산권 보호 현황 조사 보고서에서도 우리의 초라한 저작권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 115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상표권·저작권·특허권 등의 보호 수준을 평가하는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6.7점으로 23위를 차지했다. 이는 지적재산권을 포함한 모든 사유 권리를 평가하는 재산권 분야 순위 36위 보다는 높지만 여전히 선진국에 비해서는 열악한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인 셈이다.
디지털 콘텐츠와 소프트웨어는 무형의 재산이다. 끊임없는 재투자와 연구 개발을 이어가지 못하면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 갈 수밖에 없다. 저작권리를 무시한 불법 복제가 만연한 분위기에서는 제 아무리 아이디어와 패기, 기술력을 갖춰도 실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없다. 새 정부가 산업 활성화를 위한 국정 과제로 저작권에 힘을 실어야 하는 배경이다. 저작권을 존중해야 이를 개발하는 기업과 인재가 살고, 이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일 때 경제도 신바람이 날 수 있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
◆신정부,두 마리 토끼 전략 필요하다
“저작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제는 말 그대로 총론이다. 모든 사람이 불법으로 콘텐츠를 유통하지도, 이용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게 보편적인 정서다.
그러나 저작권은 공교롭게 ‘동전의 양면’이다. 권리가 지나치거나 과하면 시장과 산업에 오히려 악재가 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과 상황이 다르다.
이들 나라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저작권을 바로 보는 인식 수준이 높았다. 개인의 창작물은 철저하게 존중돼야 한다는 게 상식처럼 자리 잡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일천하다. 10대와 20대를 중심으로 거부감 없이 복제가 이뤄지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복제 자체에 대한 죄의식조차도 없다. 그만큼 인터넷과 디지털이 급속하게 우리 사회에 침투하면서 잘못된 문화가 고착화한 결과다.
저작권 정책도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엄격한 법·제도 잣대를 통한 지나친 단속은 오히려 ‘블랙 마켓’을 더욱 키울 우려가 높다. 음성 거래가 늘어나면 건전한 시장은 당연히 위축된다. 시장이 쪼그라들면 산업도 활기를 잃을 것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저작권자에게도 전혀 이득이 될 수 없다. 제 아무리 강력하게 단속해도 불법 거래를 원하는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만들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시장 논리다. 저작권자도 결국 시장과 산업이 존재할 때 의미를 갖는다.
정책의 초점은 결국 권리와 시장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쪽에 모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식과 문화를 바꿀 수 있는 정책 입안이 절실하다. ‘나쯤이야, 겨우 한 곡인데, DVD 한 장 장난삼아 즐길 수 있지’ 하는 개인 창작물을 인정하지 않는 의식부터 ‘180도’로 바꿀 수 있는 국민 대상의 캠페인을 진행해야 한다. 문화부와 산하 단체 등 특정 부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산업계·언론 나아가 네티즌까지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세부 각론을 찾아야 한다.
두 번째는 시장이 정답이다. 시장 법칙에 맡겨야 한다. 외국 사례를 보자. 미국·영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도 불법 복제 문제로 골치를 앓지만 저작권 보호를 일부 포기하더라도 유통 시장을 활성화하려는 추세가 방향을 잡아 나가고 있다. 미국의 주요 메이저 스튜디오인 EMI·워너뮤직·유니버설 뮤직 등은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저작권 보호 장치(DRM)가 없는 음악 파일 판매를 시작했다. DRM을 없애면 이용자가 음악파일을 공유해 불법 복제가 우려되지만 디지털 유통의 확산을 통해 추가적인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의도다.
신정부는 국정 과제의 하나로 문화 콘텐츠 육성과 저작권 보호를 꼽았다. 이명박 대통령 본인도 콘텐츠 산업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저작권을 강화할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미 저작권에 관련한 총론은 수많은 역대 정권에서 누차 강조해 왔다. 신정부에서는 저작권자, 시장과 산업을 위한 각론을 시급히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
◆다른 나라에선
각국은 변하는 매체환경을 반영해 저작권 보호 범위를 확대하는 한편, 문화산업발전을 위해서는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저작권법을 개정하고 있다.
미국은 저작권보호 법률 선진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국가다. 저작권 보호기간도 개인의 창작물은 70년, 산업체의 저작물은 95년으로 가장 길다.
또, 기술발달로 인해 새롭게 등장하는 각종 매체를 적극 포함해 저작물 보호범위를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25차례에 걸쳐 저작권과 관련된 법 조항을 수정했다.
음악·영화·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도메인 등도 저작권법으로 보호하는 등 적용 범위도 넓다. 특히, 특정 도메인을 고의적으로 침해하면 사기적 도메인으로 규정해 저작권법 위반으로 처벌하고 있다. 저작권 침해에 대한 처벌은 목적이나 금액에 따라 다르지만 최근 들어 재범의도 최고 10년까지도 처벌 가능하게 하고 있다.
반면에 초·중등 학교에서 교육용 목적으로 저작물을 이용할 때 저작권자는 전자적 파일을 제공하도록 하는 등 공정이용 범위는 확대하는 추세다.
최근 들어서는 저작권 문제를 무역정책에 포함해 미국무역대표부(USTR)를 통해 저작권 문제를 대외 협상에 중요한 문제로 삼고 있다.
일본은 최근 IPTV 등 방송통신 융합환경에 맞춰 저작권법을 일부 개정했다. IPTV를 방송의 일부로 보고 IPTV에서 사용되는 음원에 대해서는 방송보상청구권을 허용해 프로그램 제작에서 음원 사용을 쉽도록 허락했다.
저작권 보호 범위도 확대해 과거에는 사적복제로 허용하던 영화관에서 캠코더 등으로 영화를 몰래 촬영하는 행위를 저작권 침해로 규정해 처벌 가능하게 했다.
유럽 국가 대부분은 디지털 환경에서 저작권보호를 위한 기술적 조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또 국가마다 차이는 있지만 저작권 침해 처벌규정도 강하게 적용하고 있다.
최근 프랑스는 음반업체·영화사·통신업체 등이 참여하는 불법복제 감시 기구를 설립하고, 불법복제 영화나 음악을 내려받으면 인터넷 접속을 차단토록 하는 새로운 지식재산권 보호 규정을 만들기도 했다. 한편 EU 집행위원회는 음반보호기간을 현재 50년에서 95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수운기자@전자신문, pero@
◆특히 영국에선…
‘삼진 아웃! 너 나가!’
음악과 영화 등 타인의 저작물을 불법으로 내려받다가 세 번 적발되면 인터넷을 아예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법안이 영국에서 마련될 전망이다. 저작권자들의 열렬한 환영과 달리 지나친 규제라는 반발도 거세다. 영국 더타임스는 최근 문화미디어체육부의 법률안 초안을 입수했다며 관련 내용을 보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초안에 따르면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는 온라인에서 저작물을 불법 공유하거나 내려받는 이용자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할 법적인 의무를 갖는다. 첫 번째 적발되면 e메일로 경고하고 두 번째는 일시 사용중지, 세 번째는 계정 자체를 영구삭제하는 ‘삼진아웃’ 제도다. 이를 시행하지 않으면 사업자가 기소될 수 있다. 피적발자 명단을 ISP끼리 공유하는 방안도 나왔다.
파문이 일자 영국 정부는 “유출된 문건 내용은 검토단계의 내용이며 확인해줄 수 없다”고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영국 정부가 예전부터 저작권 보호 정책에는 강경노선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의외로 과격한 법안이 등장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특히 호주 정부가 비슷한 법 제정을 앞두고 영국을 벤치마킹하는 등 조만간 발표될 정식 법안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진영기자@전자신문, jychung@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불법 복제로 인한 피해액 규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