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은 직장인에게는 잔인한 달이다. 연말 연초 무차별적으로 긁어댔던 카드 고지서가 날아드는 시기기 때문이다. 그들을 이렇게 만든 건 지난 연말 쏟아진 ‘쩐’의 전쟁. 상여금, 연말 정산 그리고 설 보너스 등으로 야기된 금전적 풍요로움은 직장인의 간을 평소에 비해 두 배 이상 부풀려 놓는다. 하지만, 빨리 먹은 밥은 쉽게 체하는 법. 그 많던 쩐도 2월 말이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이내 남는 건 수북이 싸인 빚과 심신의 피곤함이다.
게다가 3월은 1분기 가운데 가장 바쁘다는 분기 결산이 있는 달. 업무 강도 증가와 함께 고통은 배가 된다. 머리도 주머니도 텅 빌 3월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겠지만 노여워하지는 말자. 그래도 내일의 태양은 뜨니까. 머리 아픈 직장인들을 위해 봄이 오기 전에 꼭 봐야 할 ‘머스트 시(must see)’ 영화를 소개한다. 물론 불법 다운로드는 금물이다.
◇20대, 현실 혹은 환상=연애에 목맨 솔로든 연애에 지친 커플이든 이 나이 때는 ‘사랑’에 울고 웃는다. 사랑을 테마로 한 영화를 강추한다. 지난해 내니다이어리 등 칙 릿(chick-lit, 젊은 여성을 겨냥한 영미권 소설을 지칭하는 신조어. 90년대 중반에 나온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시작점) 영화가 유행했다면 올해의 테마는 멜로.
아일랜드 영화인 ‘원스(존 카네이 감독)’는 지난해 9월 개봉해 6개월 넘게 롱런하고 있는 명작 중 명작. 서울 관객 기준 10만 명을 넘었고 저예산 영화 기록을 세울 태세다. 원스는 판타지의 마력이 없어도 훨훨 날아오르게 할 만큼 강렬하다. 일종의 뮤지컬영화인 이 작품은 음악을 매개로 한 단순한 이야기를 사이로 관객을 무장해제시키는 솔직담백한 노래가 압권이다.
금지된 사랑의 매력은 짜릿한 법. 청소년의 풋풋한 사랑은 더욱 그러하다. 예기치 않은 임신과 이로 인해 겪게 되는 해프닝을 코믹하게그려 낸 ‘주노(제이슨 라이트먼 감독)’는 포브스가 선택한 걸작이다. 남자 친구와의 진도를 고민하고 있는 젊은 여성은 이달이 가기 전에 꼭 보기를 권한다. 물론 남자에게도 의미 있다. 16세 여고생으로 분한 앨런 페이지의 매력을 90분 동안 즐길 수 있으니까.
◇30대, 감칠맛 혹은 감수성=30대가 넘으면 극장 가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 회사 업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유부녀의 경우 개인 시간은 제로에 가깝다. 그런만큼 투자 대비 효율이 높은 영화를 골라야 한다. 이럴 때 쉴새없이 몰아붙이는 영화가 적격이다. 연쇄살인범과 그를 쫓는 전직경찰을 그린 ‘추격자(나홍진 감독)’은 일상에 지친 30대가 꼭 봐야 하는 영화다. 90% 이상이 야외 촬영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의 압권은 연쇄살인범 영민(하정우)과 중호(김윤석)의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망원동 추격신이다. 한국판 ‘24시’라고나 할까?
가끔 학창 시절 영화가 생각날 때가 있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10여 년 전 스타일리시한 영상으로 우리를 잠 못 들게 했던 왕가위의 신작이다. 이별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엘리자베스(노라 존스)의 여정을 그린 이 작품은 ‘중경삼림’의 스텝 프린팅(정지 영상 효과)과 고속 촬영을 그리워하는 30대에게 강추다. 특히, 잃어버린 사랑의 열쇠를 찾길 원하는 젊은이라면 이 영화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한정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