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IT 빅뱅]금융산업 빅뱅 온다

“나, 떨고 있니?”

1995년 초 대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인공 역할을 맡은 최민수씨의 명대사다. 이 대사는 10여년이 지난 현재 금융 산업계 경영진에 가슴 속 깊이 와 닿는다. 금융 경영진들은 수년 후 2008년을 떠올리며 ‘그때 정말 잘했어’ 또는 ‘그때 제대로 했어야 하는데’라며 웃는 사람과 땅을 치는 사람이 확연히 구분될 것이다.

금융권 전문가들은 현재를 금융 산업의 지각변동이 시작하는 ‘바로 그 시점’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내년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증권·자산운용·선물·투자자문업 등이 하나로 통합돼 금융서비스 분야가 금융투자회사·은행·보험의3대 축으로 재편된다. 금융투자사는 규모를 키워 ‘한국판 골드만삭스’와 같은 대형 투자은행(IB)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여기에 지난 달 25일 출범한 이명박 정부도 한몫을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금융규제를 과감히 완화하고 금융사들이 국내외 무대에서 마음껏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산업이 고부가가치 창출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는 핵심 동력으로 만들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은 이를 위해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 제한 규제하는 ‘네거티브 방식’ 도입이 추진된다. 산업자금을 끌어들이는 금산분리 완화도 예상된다. 현재 구체화되고 있는 산업은행 민영화는 그 첫 단추다.

자통법 그리고 금융시스템의 대대적 개편. 이 시기를 어떻게 대처하는지는 곧 해당 금융 기관의 운명과 함께 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한국 금융 시장이 인수합병(M&A) 등 초대형 태풍이 불어닥친 후 대형 종합금융사와 틈새시장만을 노리는 중소형 금융사로 재편될 것으로 본다. 말 그대로 ‘금융 빅뱅’이 초읽기에 들어갔으며 ‘금융 대전’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금융기관장의 신년사에 잘 나타나 있다. 하나같이 올해를 ‘금융업계의 전환점’으로 표현하며 이를 정면 돌파하자고 임직원에게 당부했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올해를 ‘패러다임이 바뀌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조정기 또는 전환기’라고 표현하며 “이 시기를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은행의 장기 지속성장을 위한 경쟁력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용로 기업은행장은 “자통법을 앞두고 올해 금융사간 본격적인 진검승부가 펼쳐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서 “올해 펼쳐질 실력대결 결과가 향후 수년간의 경쟁구도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승부수를 던지겠다는 것이다.

자통법이 더욱 크게 와 닿는 증권업계 CEO의 목소리는 더욱 힘차다. 배호연 삼성증권 사장은 “우리 앞에 놓인 새로운 시간들은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는 변화 무쌍한 세계환경을 예고한다”면서 “우리는 이러한 여건하에서 글로벌 플레이어로서의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임직원 모두 힘차게 나가자고 당부했다. 이어룡 대신증권 회장도 ‘2008년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1년’이라고 강조하며 “회사의 모든 역량을 기울여 새로운 금융환경을 선도할 수 있도록 철저한 대응전략을 마련하고 한 치의 착오 없이 실행에 옮김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선도하는 최후의 승자가 되자”고 말했다.

이 같은 빅뱅기에 금융업계가 꼭 챙겨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정보기술(IT)’이다. 특히 지금은 IT가 더 중요한 시기다.

모든 금융 서비스는 사실 IT를 거쳐 제공된다. 금융 IT업계 전문가들은 ‘IT는 금융 산업의 핵심 인프라’라고 힘주어 말한다. IT가 잘 정비돼 있으면 무한의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 반대로 IT가 흔들리면 금융기관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김이현 투이컨설팅 사장은 “금융산업은 금융그룹 형태를 지향하게 되며 이는 업무프로세스 정비나 혁신만으로 불가능하다”면서 “고객 데이터를 통합하고 상품 정보를 공유하는 등 금융그룹의 필수 업무들은 IT 활용에 의해 성패가 갈리게 된다”고 강조했다.

IT는 금융기관의 엔진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경영전략의 변화에 따라 비즈니스의 방향을 조정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 IT협력사 임원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개최한 서재화 기업은행 부행장(CIO)은 협력사를 “우리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고객”이라고 표현했다. IT가 금융기관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말이다. 동시에 다가오는 ‘금융 빅뱅기’에 IT가 얼마나 중요한 몫을 담당할지 예측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준배기자@전자신문, j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