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의 선택과 집중

2008글로벌리포트

 최근 신세대 DVD의 규격을 둘러싸고 블루레이 진영과 경쟁을 벌이던 도시바가 ‘HD DVD 사업’을 접는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와 동시에 디지털 정보의 저장 매체인 플래시 메모리 공장 건설에 1조7000억엔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니시다 아쓰히토 도시바 사장은 미국 워너브러더스가 HD DVD진영에서 이탈하고 HD DVD 리코더 기기의 가격급락을 이유로 “경영자는 사업환경의 변화에 기민히게 대응해야 한다”며 사업철수의 배경을 설명했다.

 1970∼80년대 VCR의 ‘VHS 대 베타맥스’ 규격 분쟁에서 패배한 소니가 베타맥스방식을 고집하면서 VCR생산을 VHS로 전환하는 데 걸린 14년에 비해 도시바는 HD DVD 리코더 기기의 판매에서 채 2년이 지나지 않은 현시점에서 사업철수를 결정했다. 그리고 기업역량을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플래시메모리에 집중, 활로를 찾으려 한다.

도시바의 사업 철수와 동시에 발표된 플래시메모리 공장건설은 일견 별개의 것으로 보이지만, 규격전쟁에 이은 차세대 저장매체에 대한 규격경쟁의 막이 오른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플래시메모리를 사용한 데이터기록장치의 용량은 이미 차세대 DVD를 넘어서고 있으며, 양자는 향후 강력한 경쟁상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도시바의 HD DVD 사업철수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워너브러더스를 포함한 할리우드의 관심은 차세대 DVD를 넘어서 기술혁신에 의해 용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플래시메모리로 향하고 있다.

 영화 등의 영상매체를 현재보다 인터넷으로 간단히 다운로드할 수 있게 된다면 더이상 디스크는 필요 없이, TV에 부착된 메모리에 영상을 저장하고 재생하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도시바는 제휴처인 미국의 샌디스크와 공동으로 총 1조7000억엔 이상을 투자, 이와테현과 미에현에 2009년부터 동시에 플래시 메모리 공장을 착공해 2010년 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례가 없는 2개 공장 동시 착공은 삼성전자에 빼앗긴 세계 시장 점유율의 수위를 탈환하기 위한 결단으로 보인다. 생산능력은 1공장 당 300밀리웨이퍼로 월간 15∼20만개를 만든다.

도시바는 지금까지 2∼3년마다 1개의 반도체공장을 신설해왔다. 2개 공장을 동시에 건설하는 것은 수요급증에 적절히 대응하고 경쟁사에 대한 우위를 점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낸드형 플래시메모리는 MP3플레이어와 휴대폰용 메모리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으며, 컴퓨터의 HDD를 본격적으로 대체하게 되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 기업들은 1990년 초 버블붕괴 후 의사결정의 지연, 기업구조조정 등으로 신속한 설비투자를 하지 못한 반면에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과감한 투자를 단행한 한국기업들에 D램과 LCD 등의 분야에서 세계 시장 지배력을 빼앗겼다는 의식이 강하다.

도시바의 2개 공장 동시착공의 결단은 이와 같은 쓰라린 전철을 다시는 밟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그동안 주력사업의 하나였던 디지털가전부분의 HD DVD로부터 철수를 결정한 이유 중의 하나도 여기에 있다. 반도체와 함께 도시바가 핵심 사업으로 정한 원자력도 향후 투자확대가 예상되며, 음악영상소프트 및 옛 본사 빌딩매각 등 기존에 비 핵심분야에 한정됐던 사업의 선별이 핵심 분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한국 기업을 겨냥한 도시바의 선택과 집중에 우리 업체들이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홍상영 KOTRA 도쿄무역관 차장(saiyoung@kotr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