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경제 실험 10년 `아이슬란드`는?

2008글로벌리포트

지난 1998년, 아이슬란드는 수소경제를 추구하겠다고 발표한 첫 번째 나라가 됐다. 인구 30만명의 작은 경제규모, 천혜의 지열과 수력 자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은 수소경제의 실현을 약속하는 최상의 조건으로 여겨졌다.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고민하는 선진국들은 국제적 테스트베드로서 아이슬란드를 주목해 왔다. 이후 10년, 아이슬란드의 야심찬 비전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까.

수입 석유제품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에너지 구조를 갖고 있던 아이슬란드는 1970년대 초부터 지열을 적극 개발해 도시지역 난방 전부와 전력 일부를 대체하는 데 성공했다. 이때 얻어진 ‘에너지 전환’에 대한 자신감은 아이슬란드인이 수소 에너지의 가능성에 쉽게 마음을 여는 원동력이 됐다. 또 국토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원지대에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강과 호수의 수량이 많고, 인구밀도가 극히 낮아 보상과 환경문제에 대한 부담이 적어 값싼 수력발전의 잠재력이 풍부하다는 점에 유럽과 미국이라는 큰 시장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여건까지 맞물려 대형 알루미늄 공장을 연거푸 유치할 수 있었다.(알루미늄 생산은 전력 집약적 산업이다.)

 1980년대 이후 알루미늄 수출은 변변한 제조업이 없는 아이슬란드 경제에 커다란 성장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이미 알루미늄을 매개로 신재생에너지를 수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위한 교토 의정서에서 아이슬란드를 포함한 서구 고소득국가들이 의무감축대상국으로 지정되면서, 아이슬란드가 알루미늄 생산 설비를 추가하는 데 빨간 불이 켜졌다. 전력 생산 과정은 탄소가 배출되지 않는 즉, 카본프리(carbon-free)지만, 알루미늄을 생산할 때 원광석(보크사이트)에 포함돼 있는 이산화탄소의 배출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1998년 아이슬란드는 수소경제로의 전환을 선언하게 된다. 풍부한 청정 전력으로 수소를 생산해서 운송용 연료를 대체하면 아이슬란드는 화석연료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다.

2000년대 들어 미국·EU 등 선진국 주도로 기후변화 문제가 세계적 이슈로 떠오르자 수소경제 국제 테스트베드로서 아이슬란드의 인기는 치솟았다. 연료전지 버스와 어선을 시험했고, 수도 레이캬비크에 수소 충전소가 세워졌다.

불행히도 10년이 지난 지금 아이슬란드의 수소경제 실험은 장밋빛 미래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기술 및 제품 모두를 외국에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이 큰 장애물로 작용했다. 실험장을 열어 놓으면 연료전지 자동차를 수십대씩 들여올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자동차 회사들은 아이슬란드가 아닌 미국 캘리포니아로 달려갔다. 연구개발은 물론이고 홍보효과나 미래를 대비한 투자 측면에서도 아이슬란드의 작은 시장은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돈을 줘도 연료전지차를 팔겠다는 회사가 나서지 않자, 운송수단만 대체하면 된다던 낙관론은 답답함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연구개발 역량이 부족하니 아이슬란드의 여건과 환경에 특화된 수소 제조 및 저장 기술의 개발도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아이슬란드는 국제수소경제파트너십(IPHE)의 공동의장국으로서, 수소경제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데에 있어 여전히 중요한 실험장이다. 그러나 천혜의 에너지환경, 적극적인 정부 정책, 높은 사회적 합의 등 모든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고전 중인 아이슬란드의 사례는 에너지 전환이 매우 어려운 일이며, 기술 역량과 산업 기반이 에너지 전환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다.

<박상욱 박사. 영국 서섹스대 과학기술정책연구단위(SPRU) Sangook.Park@sussex.ac.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