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유통가격의 비밀](상) 장려금 실체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한 대형 마트. 이곳 지하 1층과 지상 1층에는 각각 휴대폰 매장이 있다. 두 영업점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내릴 수 있는 거리다. 시간으로 따져도 채 1분도 안 된다. 두 매장에서 판매하는 휴대폰 종류는 거의 유사하다.

 지난 2월 12일 먼저 지하 1층 매장을 찾아 DMB폰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점원은 삼성전자가 제조한 ‘SPH-B8250’ 모델을 꺼냈다. 정가가 37만7300원이지만 번호이동 시 18만원에 줄 수 있다고 했다.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요금제나 부가 서비스는 없었다. 1층 매장으로 올라갔다. 같은 모델을 물어봤다. 그런데 지하 1층 매장과 달리 공짜다. 요금제와 부가서비스, 의무사용기간 등에 따라 휴대폰 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하지만 이 매장 역시 의무 조건은 없다고 했다. 불과 한 층을 사이에 둔 매장에서 어떻게 18만원이란 가격차가 벌어진 것일까. 게다가 37만원짜리 휴대폰이 18만원, 심지어 0원까지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휴대폰 가격 비밀의 열쇠, ‘장려금’=고무줄 같은 휴대폰 가격의 비밀을 알려면 휴대폰 유통 구조, 특히 ‘장려금’을 파악하는 게 관건이다. 업계에서는 ‘리베이트’‘그레이드’ 등으로 불리는 장려금은 이동통신사와 휴대폰 제조사, 상위 유통 업체들이 영업을 독려하기 위해 지원하는 돈이다. 목표를 달성하면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성과급과 같은 개념이다.

 장려금은 원래 판매자에게 지급하는 사후 보상 성격의 돈이지만 일선 영업 현장에선 이 장려금을 휴대폰 보조금으로 앞당겨 전용한다. 예를 들어 30만원짜리 휴대폰 10대를 팔면 장려금으로 20만원을 받는다고 할 때 판매자는 추후 장려금 받을 것을 미리 계산해 휴대폰 판매 가격에 반영한다. 계산하면 대당 장려금이 2만원이니 28만원에 파는 식이다. 휴대폰을 싸게 팔아야 소비자의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에 나중에 보상 받는 것보다 지금 당장 가입자 유치에 장려금을 이용한다.

 휴대폰 보조금은 이동통신사가 약관에 정해놓은 금액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합법 보조금’만 존재해야 한다.

 장려금의 유형은 수 없이 많다. 본지가 입수한 한 대리점 정책표에 따르면 이동통신사, 휴대폰 제조사, 지역 유통 본부 등에서 받는 장려금 항목이 24개나 됐다. 가입자를 유치할 때마다 받는 `개통 장려금’, 특정 요금제를 가입시키는 데 따르는 `SR상품 연계 유치 장려금’, 휴대폰 제조사가 자사 단말기 판매 독려를 위해 지원하는 `제조사 정책’, 특정 기한에 한정 실시되는 `판매 활성화 정책’ 등이 적혀 있었다.

 ◇공짜폰부터 마이너스폰까지=수십만원짜리 휴대폰이 1000원 또는 공짜에 팔리고 심지어 ‘마이너스폰(휴대폰을 공짜로 판매하면서 현물 또는 상품권 등으로 일정 금액을 더 주는 것)’으로 변신하는 ‘마법’도 바로 장려금으로부터 시작된다.

 실례를 살펴보면 이렇다. 지난 1월 말 LG전자가 제조한 ‘LG-KH1200’이란 모델에 실린 장려금은 △SR 상품 연계 유치 1만5000원 △LG전자 제조사 정책 4만원 △LG-KH1200 신규활성화 5만5000원 △LG전자 신규활성화 정책 3만3000원 △5주차 판매 활성화 정책 6만원으로, 총 20만3000원이다. ‘LG-KH1200’ 모델의 출고가는 23만6500원으로 대리점은 3만3500원 이상만 팔면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셈 법이 나온다. 판매자는 ‘LG-KH1200’을 순수하게 3만3500원에 팔지, 아니면 이익을 더 붙여 6만원에 팔지 결정만 내리면 된다.

 공짜폰 또는 마이너스폰은 23만원짜리 휴대폰이 3만원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은 과정으로 탄생한다. 실적이 좋은 대리점일수록 장려금이 더 많은데 이는 곧 더 싸게 휴대폰을 판매할 수 있다는 의미다. 즉 ‘LG-KH1200’을 3만원이 아니라 무료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대형 대리점이 아니더라도 판매자가 장려금과 고유 수익인 ‘개통 수수료’ ‘통화 수수료’까지 휴대폰 가격에 반영하면 무료로 휴대폰을 팔거나 다른 상품을 끼워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리점은 이슬을 먹고 산다(?)=이처럼 고유수수료까지 가격할인에 사용하는 대리점은 뭘 먹고 살까?

 우선 대리점은 가입자가 사용하는 이동통신 요금의 일정 비율(6∼8%)을 통화 수수료로 받는다. 서울 잠실의 한 대리점 관계자는 “해당 매장에서 가입한 고객이 매달 사용하는 이동통신 요금의 7∼8%가 통화수수료”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월평균 4만원을 이동통신 요금으로 사용하는 가입자 코드 10만개를 갖고 있다면 이 대리점은 월평균 2억8000만원(7% 기준)의 통화수수료를 받는 것이다. 또 휴대폰 한 대를 개통시키면 대당 2만2000원 정도를 개통수수료로 받는다. 부가서비스는 3개월 약정을 기준으로 대당 평균 5000원 정도가 주어진다.

 SKT 대리점의 한모 사장은 “대형 대리점은 한달 평균 5000대에서 1만대 정도의 휴대폰을 판매한다. 연간 매출액이 1000억원을 넘는 대리점도 있다”며 “이들 대리점은 한달에 챙기는 수수료만 몇 억원씩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대리점은 요금수납 수수료, 고객만족(CS)수수료 등도 받는다.

 ◇휴대폰 유통의 그늘=이동통신사, 제조사들은 장려금을 신규 가입자 유치나 다른 통신사 고객을 끌어오는 데(번호이동)에만 대거 투입하고 있다. ‘신규가입 또는 번호이동 시 공짜’라는 휴대폰이 이런 경우다. 가입자 유치에만 혈안이 돼 있다 보니 휴대폰을 제값 주고 사는 소비자, 또 안 바꾸고 계속 쓰는 이용자만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 이는 곧 휴대폰 교체를 부추겨 폐휴대폰 양산 등 자원낭비 문제를 유발하는 원인이다.

 공짜폰이나 마이너스폰은 분명 수십 만원이 소요되는 초기 단말기 구입비용을 절감시켜 준다. 알뜰 소비자에게는 분명 달콤한 유혹이다. 그러나 이는 자칫 금단의 열매(forbidden fruit)가 되기도 한다. 일부 소비자는 온라인에서 예약한 휴대폰을 배송받지 못하거나, 구매대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개인정보 유출 문제도 빈번하다. 부가서비스 의무 가입을 둘러싼 마찰도 끊이지 않는다.

 이동통신 업계 관계자는 “부가서비스 유치를 통해 이통사로부터 받을 수수료를 미리 휴대폰 가격으로 할인해 줬던 대리점 입장에서는 가입자가 3개월 이상 사용해야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며 “이 때문에 부가서비스 해지를 둘러싸고 다툼이 생긴다”고 말했다.

◆전국 이동통신 유통조직 현황

 전국에서 휴대폰 판매를 하는 매장(대리점 판매점 직영점 포함)은 총 2만여개로 추산된다.

유통구조는 크게 이동통신사 직영점, 대형 대리점, 판매점(Sub 대리점) 으로 구분된다. 판매점은 수납이나 요금제 변경 등을 할 수 있는 코드를 갖지 않은 채 대리점 가입자 유치를 대신하고 대리점에서 장려금을 받는 비즈니스 모델을 채택한다.

 현재 SK텔레콤 이동통신 대리점은 총 1100여개로, 이 가운데 SK네트웍스가 자체 운영하는 직영점은 90여개에 이른다. KTF는 대리점 1160곳과 직영점 250곳을 보유하고 있다. LG텔레콤은 전국 판매망을 소총부대 위주로 구성해 놓고 있다. LG텔레콤은 대리점 1000곳과 폰앤펀, ez-post와 같은 직영점 350곳을 운영 중이다.

탐사보도팀=김종윤·김원석·윤건일기자@전자신문, tam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