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디즈니랜드가 짝퉁 일본 캐릭터 집합소로 변했다?’ 베이징 서북쪽에 위치한 유원지 스징산위러위안(石景山娛樂園, 스징산)은 2007년 5월께 전 세계의 관심을 받았다. 미키마우스 등 월트디즈니의 유명 캐릭터를 마구잡이로 이용하는 걸 대대적으로 홍보했기 때문이다. 물론 캐릭터 도용은 없다고 잡아뗐다. 류징왕 스징산 사장은 누가 봐도 미키마우스인 캐릭터에 대해 직접 “독자 제작한 큰 귀를 가진 고양이”라며 “모든 게 독자 제작한 캐릭터”라고 말할 정도다. 분노한 미국 디즈니가 베이징판권국에 지식재산권 침해 혐의로 고발, 스징산에서 디즈니 캐릭터는 없어졌다. 하지만 2007년 10월께 스징산은 다시 ‘세일러문’ ‘CC사쿠라’ ‘톳토코햄타로’ 등 대표적인 일본 캐릭터로 뒤덮였다.
캐릭터 산업이 막대한 부가가치 창출 가능성을 인정받으며 국내 캐릭터·애니메이션 업계도 이 같은 캐릭터 무단 도용 문제에 직면했다. ‘마시마로’ 캐릭터 사업을 진행하는 씨엘코엔터테인먼트가 지난 2005년 소송을 통해 중국 중소기업의 마시마로 상표 출원 및 상품화를 무산시킨 게 대표적인 사례다.
#지재권 권리화 중요하지만 미흡
캐릭터·애니메이션 도용은 상업적 이윤이 목적으로 개인적인 온라인상 불법 콘텐츠 다운로드와 달리 조직적, 기업형으로 이뤄지는 게 보통이다. 이 때문에 도용을 막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가능한 한 빨리 상표권 등록 등을 통해 지식재산권을 권리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산 캐릭터는 관련 권리화가 미흡한 상황이다. 특허청이 지난 2007년 6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당시 기준으로 총 650건의 캐릭터 관련 상표등록 중 국산 캐릭터 비중은 24%(156건)에 불과하다. 일본 캐릭터는 56%(364건)를 차지할 정도로 상표등록이 활발하다.
상표등록이 캐릭터·애니메이션 산업의 직접적인 성과지표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2006년 실시한 캐릭터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기록한 ‘(아기공룡)둘리’의 상표등록이 22건(11위)에 그쳤다는 것은 캐릭터 ‘몸값’을 잘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특허청은 “캐릭터 적용 범위가 확대되는 등 경제적 가치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며 “캐릭터 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체계적인 캐릭터 지재권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제 적극적 외화 벌이로
캐릭터 상품등록 등 지재권 관리는 지금까진 자신의 수익을 뺏기지 않으려는 소극적 개념으로 여겨지는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한미 FTA에서 저작권 인정 기간이 저작자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늘어나는 등 사회 각 영역에서 지재권 강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해외 콘텐츠에 대해 지급할 비용이 늘어났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 시장에서 아직 비중이 낮은 한국 캐릭터·애니메이션 산업이 지재권이 강화된 만큼의 산업적 가치를 더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고 보는 시각도 상존한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려는 적극적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한국 콘텐츠에 대한 지식재산권 인정도 강화되는 것”이라며 “한국 캐릭터, 애니메이션이 해외에 진출해 정당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길도 넓어지고 있다”고 봤다.
◆캐릭터를 보호받으려면?
뼈를 깎는 인내와 창조의 고통을 통해 만들어지는 캐릭터·캐릭터명을 보호받는 것은 지식경제 시대의 당연한 권리이자 국가나 사회가 응당 책임져야 할 의무다. 캐릭터·캐릭터명을 보호받기 위해서는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의 저작권등록 및 특허청의 상표등록절차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필요하다.
캐릭터는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기 때문에 창작을 완성한 시점에 맞춰 저작권이 발생, 발표된다. 이 때문에 별도의 저작권등록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며 한 국가에서 인정된 저작권을 다른 나라에서도 공통으로 인정해 주자는 ‘베른협약’에 대부분의 국가가 가입돼 있기 때문에 발생된 저작권은 전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캐릭터 제작자와 타인 사이에 캐릭터 저작권과 관련한 분쟁이 발생해 해결을 시도하거나 타인의 도용에 대해서 캐릭터를 보호받으려면 본인이나 기업이 진정한 캐릭터 창작자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이 때문에 캐릭터에 한해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에 미리 저작권등록을 해 두면 추후 저작권 관련 각종 인정 절차를 쉽게 진행할 수 있다.
캐릭터명은 현행 법 체계에선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으며 저작권법 및 저작권법 판례에 의한 보호 대상도 아니다. 따라서 캐릭터명은 상표로 등록해 보호받아야 한다. 캐릭터명이 사용될 수 있는 상품의 종류를 정해 특허청에 상표로 출원, 등록을 완료하면 그 순간부터 다른 사람이 해당 상품이나 유사한 상품에 캐릭터명을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상표 등록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상표권은 등록된 국가에서만 효력이 있다는 점이다. 즉, 본인이 ‘A’라는 캐릭터명을 활용한 상품을 한국과 중국에서 판매하고 싶다면 양국 모두에 상표 등록을 마쳐야 한다.
이 때문에 글로벌 캐릭터 기업은 세계 각국에 상표를 신청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상표가 등록된 캐릭터는 일본 산리오의 ‘키티(Kitty)’다.
◆캐릭터·애니메이션 성공사례
시의적절한 기획 및 상품화와 저작권 관리로 성공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산 캐릭터·애니메이션으로는 부즈의 ‘뿌까’를 꼽을 수 있다.
중국 음식점 계룡반점의 외동딸로 설정된 여성 캐릭터 뿌까는 콘텐츠보다 캐릭터가 먼저 개발됐으며 기획 단계부터 해외 시장을 염두에 뒀다. 2000년 뿌까가 처음 공개된 플래시 애니메이션에서 전 세계에 공통으로 어필할 수 있는 소재인 ‘사랑’을 선택했으며 당시 국내 디자인계에서는 흔치 않은 작은 실눈, 동그란 얼굴 등 형태도 단순화해 인지가 쉽게 되도록 했다.
캐릭터설정이 완료된 2001년 휴대폰 액세서리를 시작으로 라이선스를 통한 본격적인 상품화가 시작됐다. 현재까지 뿌까를 이용한 상품은 총 2500여종으로 전 세계 170여개국에 판매돼고 있으며 2007년에만 약 3000억원의 매출액을 부즈에 안겨줬다.
상품화는 다시 캐릭터·애니메이션의 인기 및 활성화로 이어졌다. 영국 제틱스(Jetix)와 합작, 브에나비스타가 배급을 맡은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캐릭터 부문만 강했다는 일각의 뿌까 비판을 불식시켰다. ‘뿌까 레이싱’으로 온라인 게임 산업에도 진출했다. 이런 성공에 힘입어 뿌까는 문화콘텐츠진흥원이 매년 만화·애니메이션·캐릭터 부문에서 가장 성공적인 콘텐츠를 선정해 시상하는 ‘대한민국 만화애니메이션캐릭터 대상’을 3회 수상해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최근에는 미국·캐나다 지역의 캐릭터 라이선싱 기업 억세스 라이선싱 그룹(ALG)을 통해 북미 지역에도 진출하기로 했다. 부즈는 뿌까의 북미 진출 계약금만 12억원을 받았으며 앞으로 상품 판매 시 발생하는 수익의 일정 부분을 로열티로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