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장품] 이충훈 유비산업리서치 사장

 호기심 많던 초등학교 시절.

 집에서 무료함을 달래기에 가장 좋은 놀이는 부모님 장롱 뒤지기였다. 선친은 눈썰미가 워낙 좋으셨던지라 당신의 서랍에서 볼펜 위치만 바뀌어도 금방 눈치를 채시고 꾸지람하셨기에 그만큼 스릴은 더 했다. ‘들키지 않고 뒤져야’ 하는 고도의 머리싸움을 요하기도 했다.

 선친의 물건 중에서 내가 가장 탐을 낸 것은 다양한 나라의 우표들이었다. 취미는 아니었지만 외국 친구들로부터 우편물이 오면 꼭 우표를 잘라서 다양한 상자 속에 넣어 두셨기에, 몰래 조금씩 꺼내어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일이 잦아졌다. 급기야 용돈이 궁했던 중학교 시절 선친 몰래 일괄 정리(?)를 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할 정도로 끔찍하게 혼이 났다.

 올림픽이 열리던 88년 선친은 숙환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유물을 정리하다 다시금 편지봉투에서 갓 잘린 듯 한 우표 모음을 발견했다. 네 형제 중 맏이인 나를 지독히 아껴주셨던 선친의 손길이 다시금 강하게 느껴지며, 어릴 적 선친 장롱을 뒤지던 내 추억과 엄하지만 자상하셨던 선친의 모습이 오버랩돼 가슴에 새겨졌다.

 대학원을 마치고 첫 직장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취미도 아니지만 새 우표가 나올 때마다 사 모으기 시작했다. 유학 시절 5년간 새 우표가 나올 때마다 용돈을 아끼며 모았다. 나의 아버지처럼 나의 자식에게도 아빠를 느낄 수 있는 뭔가를 남겨 두고 싶었다.

 고3인 딸은 우표에 전혀 관심이 없다. 일곱 살 늦둥이가 나중에 내 서랍을 뒤지다 발견하면 나처럼 우표를 팔아도 좋다. 보잘 것 없는 종이 딱지지만 내 아버지를 기억하고 아빠를 기억할 수 있는 물건이 됐으면 좋겠다.

 지금도 이따금 우표를 보면 선친의 얼굴이 떠오른다. 우표를 붙였던 편지에 저마다 사연이 담겨 있듯, 나에게 아버지의 우표첩은 추억의 책장 같은 사연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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