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앞 뜰에 어스름이 내리는 어느 이른 봄날. 그녀와의 만남은 그렇게 도시의 아득한 불빛이 하나 둘 내리기 시작하는 봉은사 근처 레스토랑에서 시작됐다.
“기사화 하지 않으실 거죠?”
제이씨엔터테인먼트 김양신 사장(54). 그녀는 처음부터 인터뷰를 극구 사양했다. 일단 약속 때문에 나오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려니 너무 부담이 된다는 것이었다. 너무 평범해서 내세울 것도 없고 특별한 얘깃거리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왕 만났으니 지나온 얘기나 하자며 주저앉혔다.
“살아 있다는 느낌, 살아있는 것에 대한 느낌이 좋아서지요.”
뜻밖이었다. 인터뷰를 사양하던 그녀의 첫 마디는 의외였다. 사업을 왜 시작했냐는 물음은 그렇게 그녀의 치열하면서도 한편으론 아득한 꿈을 끄집어 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을 하려 했는데 받아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녀의 눈가에 다시 어둠이 내렸다. 연좌제라는 굴레가 그녀의 집안 한 켠에 그렇게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경상도 통영 출신인 그녀의 가족중 한 사람이 그런 일로 연관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랬다. 1980년대 그 시절만 해도 그랬다. 시대의 아픔이 그녀에게서도 배어났다. 인터뷰를 사양한 또다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외국기업으로 취직을 시도했다. 그것도 일본 기업이다. 연좌제 때문에 비자가 나오지 않아 대학 총장의 추천서까지 받고 나서야 겨우 해결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1년이 지난 후 비자를 갱신해야 하는데 어쩐 일인지 잘 안돼더라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일본 정부가 외국인에게 까다롭게 적용하는 룰에 걸렸다.
◇유통의 한계를 창업으로
아예 귀국을 했다. 이후 KCC정보통신, 쉘 등을 전전하다 결혼도 했다. 대학 친구였다. 7년을 무덤덤한 친구로 지냈는데 한번 정식으로 교제해 보자고 웃음으로 대답한 게 두 달도 못채우고 결혼하게 됐다. 결혼을 얘기할 때야 비로소 그녀는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창업을 했다. 1994년의 일이다. ‘살아있다는 느낌’을 잊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도 일에서 나오는 살아있다는 느낌이 그리웠다고 했다. 통영 앞바다 그물에서 갓 잡아올린 생선의 꿈틀거림처럼 그런 살아있는 느낌을 잊을 수 없다고도 했다.
처음엔 컴퓨터그래픽스(CG)와 같은 용역 개발사업을 시작했다. 용역사업만 하다 CG 소프트웨어(SW) 솔루션 판매도 대행하고 또 기능을 가르치는 학원도 겸했다.
CD롬 타이틀 개발 용역을 맡은게 또다른 계기가 됐다. 당시 모 PC통신사 교육용 타이틀로 1만장의 우표 교육용 타이틀을 개발, 공급했는데 남는 게 없었다. 유통의 취약점이 문제였다. 유통사가 중간에서 좌지우지 하는 바람에 개발사에 돌아오는 몫이 없었다.
아예 영역을 바꿔 게임 개발사업을 하기로 했다. 유통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고 느끼게 해준게 바로 온라인 게임이었다. 온라인 게임은 유통사가 없어도 되고 매달 이용자가 이용료를 내면 수익으로 잡으면 되기 때문이다.
첫 작품은 ‘워바이블’이었다. 곧이어 ‘레드문’도 개발했다. 1997년의 일이었다. 첫 성과치곤 반응이 좋았다. 온라인 스포츠게임(농구) 프리스타일도 히트했다. 유럽과 중국, 일본, 미국에도 수출했다. 엔씨소프트와 넥슨이 게임 사업을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즈음의 일이다. 하지만 두 회사와는 달리 제이씨엔터테인먼트는 인력을 육성하면서 하나 하나 쌓아갔다. 그녀의 고집 때문이었다. 직원이라는 것도 상호 발전하면서 가족이 된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가능성을 보다
게임사업에 뛰어들면서 그녀가 주목하는 게 있다. 바로 온라임 게임의 가능성이다. 세계 각국은 현재 통신인프라 구축에 여넘이 없다. 미국과 일본은 이미 상당히 앞선 상태다. 중국·인도·인도네시아·러시아·브라질 등도 마찬가지다.
“이미 ‘리니지’는 전세계 5억명의 인구가 즐기고 있고, ‘프리스타일’도 1억명이 넘는 매니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상품중 10억명 이상의 고객에게 상품을 팔 수 있는 게 있다면 얼마나 있을까요.”
글로벌 오락산업으로서의 ‘흥행성’을 보라는 것이다. 그녀는 인터넷 강국인 우리나라의 강점을 살리면 온라인 게임에서 성장산업, 먹거리 산업의 희망 하나를 건져올릴 수 있다며 눈을 반짝였다.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그녀의 눈빛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었다.
미국과 영국, 유럽 여러 나라가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다. 광활한 비즈니스 영토가 열려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맹렬하게 추격해 들어오는 중국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한 수 아래다. 우리의 역량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할 때는 그녀의 목소리가 절로 높아갔다.
억울한 것도 있다. 아직은 게임 산업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게 그녀의 생각이다. 매년 매출이 급성장하고 영업이익도 40∼50%를 상회하는데도 시장에서 저평가받고 있다는 것이다.
게임산업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이 사회에 광범위하게 자리하고 있다. 전문가적 식견을 갖춘 애널리스트도 찾아볼 수 없다. 해외시장의 기회요인과 현재 기업 실적을 감안하면 평가에 인색한 게 우리네 정서다.
그녀를 힘들게 하는 것은 또 있다. 바로 사회적 편견이다. 게임은 청소년에 무조건 해롭다는 인식이다. 모든 게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갖고 있기 마련인데, 유독 게임만 단점이 부각돼 오해까지 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이 인생을 즐겁게 해준다는 인식을 갖도록 그런 작품을 개발하고 싶다는게 그녀의 생각이다. ‘코 묻은 돈’을 갈취하고 공부를 방해하는 게 아니라 교육성도 가미하고 행복감도 만끽하게 해주는 그런 게임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놀이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꿔주는 스포츠와 같은 그런 게임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영화나 바둑과 같은 오락으로 봐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바둑은 고상하고 게임은 해로운 것이라는 그런 인식이 바뀔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60∼70살이 돼도 게임을 오락으로 즐기는 그런 문화를 만들고 싶어한다.
◇무위경영으로 길을 찾다
쉬는 날이면 그녀는 가끔 산에 오른다. 사색하기엔 산만큼 좋은 곳도 없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를 얻기에도 좋다. 아이디어는 번뜩이는 감각과 반복적인 생각이 어우러지면서 숙성되는 법인데, 사무실에만 갖혀 있으면 창의력이 발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때 집 안의 인터넷을 끊기도 했다. 집에서도 일해야 하느냐는 스트레스를 벗기 위함이었다.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보고, 자신도 고민해 보지만 쉽지 않은게 창의력 싸움이다.
산이 가끔 그녀에게 답을 준다. 산은 그렇게 그녀에게 깊이보다는 넓은 시각으로 일을 바라보는 안목을 가져다 줬다. 밖에서 안을 바라보면 더 잘 보이는 법이다.
영화도 자주 본다. 영화와 게임은 유사한 면이 있다. 드라마도 자주 본다. 드라마 역시 게임의 소재가 된다. 좋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느낌’을 얻는다는 것이다.
홈쇼핑 채널도 즐겨본다. 홈쇼핑 채널에 가보면 구두나 옷, 가방, 화장품 등 모든 것을 한꺼번에 쇼핑할 수 있다. 원스톱 쇼핑의 편리함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백화점에 갈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가 당장 바라는 건 두 가지다. 하나는 새로 출시하는 기대작 ‘고스트X’와 ‘축구’의 대박에 대한 꿈이다. 준비를 많이 해온 만큼 자신은 있지만 학예회 무대에 선 아이처럼 그녀에겐 설렘과 걱정이 똑같이 자리하고 있다.
또 하나는 고향으로 내려가 도다리쑥국과 멸치무침을 차려놓고 여유롭게 식사 한번 해보는 것이다. 통영, 그녀에게 그곳은 그런 푸근하면서도 아득한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통영에는 문인과 예술가들이 많이 난다고 한다. 박경리, 유치환, 유치진, 윤이상, 김상옥, 공병호 같은 이가 대표적이다.
“통영, 그곳에 가면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기분입니다. 그런 다짐을 주는 곳이 또 고향이기도 하고요. 문인들의 삶과 사상은 그래서 한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녀가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무위경영(無爲經營)은 다시금 눈길을 끈다. 인본 위주의 무위경영을 통해 기업은 반드시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그녀의 생각과도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무위경영은 그래서 그녀에게 항상 똑같은 답을 준다.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살라고. 그리고 고향인 통영 앞바다의 푸른 일렁임을 항상 간직하라고…
◆김양신 사장은
경상남도 통영 남쪽 바다가 보이는 동네가 고향이다. 1954년생이다. 통영에서 고교를 나온 재원중의 재원이다. 연세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KCC 프로그래머를 거쳐 쉘 정보관리책임자(CIO)를 맡았다. 우영시스템 개발부장을 역임했으며 청컴퓨터그래픽스 대표이사를 지냈다. 이후 제이씨엔터테인먼트를 설립, 게임사업에 뛰어들었다. 와인을 즐겨 마시며, 영화감상과 등산을 좋아한다. 친구 같은 남편과 자신을 닮은 딸 둘이 자랑거리다. 기업을 하면서 얻은게 있다면 무위경영(無爲經營), 바로 인본주의를 결합한 시스템 경영이다.
박승정기자@전자신문, sj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