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지배구조와 소액 주주 권익 옹호를 내건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일명 장하성펀드)가 최근 일부 우량 IT 기업을 표적으로 삼으면서 해당 업체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해당 업체는 경영진이나 대주주의 전횡으로 인해 기업가치와 주주권익을 훼손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를 이해하지만 투명성·성장성·실적 모두 손색이 없는 기업에 대한 경영 간섭은 곤란하다는 견해다.
장하성펀드의 운용사이자 아일랜드계 펀드인 라자드애셋매니지먼드(LAM)는 최근 반도체·LCD 설비 전문업체인 에스에프에이의 지분 6.4%를 사들이며 경영진을 압박했다. LAM 측은 소액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경영진의 불법 행위와 내부 통제 실패를 심각하게 우려한다”면서 “이사회와 감사 또한 견제기능을 상실해 이번 주총을 통해 신규 사외이사와 감사를 선임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에스에프에이의 전 직원이었던 K모씨가 인사에 불만을 품고 수차례 현 경영진을 배임혐의로 고소했던 전례를 들어서다. 심지어 LAM은 에스에프에이가 삼성전자·삼성코닝정밀유리 등 삼성 계열사가 주고객사라는 점에서 삼성 비자금 사건과의 연루 의혹까지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에스에프에이는 LAM 측의 이 같은 공세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영진을 상대로 부정혐의에 대한 고소·고발건이 지난 수년간 검찰에서 계속 불기소 처분이 내려진데다 지배구조의 투명성은 여느 기업보다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스에프에이의 지분 구조를 보면 각각 국내 기관투자자가 44%, 외국 기관투자자가 34%, 일반 소액주주가 16% 정도로, 대표이사를 비롯한 현 경영진의 지분율은 2% 미만이다.
지난 1998년 창업당시 삼성항공의 사업부 단위가 분사했던만큼 초기에는 삼성항공이 19%의 지분을, 나머지를 종업원 지주제 형태로 보유하기도 했지만 코스닥 등록 후 지금은 삼성 지분은 없는 상태다. 에스에프에이로선 대주주 지분이 워낙 취약한 탓에 되레 이 같은 압박을 받고 있다며 항변한다. 매년 순익의 20%를 주주들에게 배당해왔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신은선 사장은 “어느 기업보다 투명경영을 강조해왔던 터라 장하성펀드의 경영참가 선언은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며 “새로운 성장을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어야 할 때 신속한 의사결정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염려스럽다”고 걱정했다.
이에 대해 LAM 한국법인 관계자는 “전적으로 뉴욕 법인의 판단 아래 (투자를 결정하고) 진행한 일”이라며 “어떤 공식적인 답변도 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LAM은 이에 앞서 올초 CRT 유리기판 업체인 한국전기초자의 지분 5.07%를 취득하며 역시 감사 선임을 요구했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투명성 제고나 주주권리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결국 펀드의 속성은 투자 차익 아니겠느냐”면서 “이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도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서한기자@전자신문, h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