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15년 혼돈에 종지부를

 “페이퍼리스 시대를 외치면 뭐합니까. 괜히 따라하다가 제 목만 달아날 판인데요.”

 “어떤 기록이 어디에 쌓여 있는지 몰라, 민원에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 21세기 정보화 강국에서 있을 법한 일입니까.”

 ‘종이 없는 업무환경’이라는 공통된 목표 아래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해 온 전자문서 업계 관계자들이 쏟아놓은 불만이다. 다소 차이는 있으나 이들이 한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는 것은 부처별로 해석이 다른 ‘전자문서의 종이문서 효력 대체’다.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사태를 위해 종이문서까지 함께 보관해야 한다면, 페이퍼리스화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항변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보관해야 하는 종이문서가 연간 5000만장에 이르고, 현대자동차는 문서보관 창고면적만 약 3300평방미터(약 1000평)며 삼성화재는 수도권 종이문서 창고 운영비로만 매년 30억원을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종이 없는 은행’을 구상하고 있는 은행업계 사정은 더하다. 막상 전자문서화와 업무처리 디지털화로 종이를 없애버리는 혁신을 시도하려 해도, ‘종이문서 보존 의무’라는 복병이 도사리고 있어 사실상 추진이 불가능한 상태다. 은행업계는 입출금이나 이체 시 전표 용도로 쓰는 종이만도 선두업체는 4억5000만장, 금액으로는 연간 수십억원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더욱이 올해 초 정부 청사 화재에서 경험했듯이 사무실 캐비닛이나 창고에 보관된 문서는, 백업시스템과 철저한 보안이 이뤄지고 있는 저장설비에 담긴 전자문서에 비해 결코 안전하지 않다.

 마이크로필름 시절부터 논란이 거듭돼 온 ‘전자문서의 효력’을 놓고 정부부처의 해석이 15년째 갈팡질팡하고 있다. 이명박정부 초기 업계가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업계는 새 정부가 ‘전자문서가 종이문서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으로써 종이문서와 전자문서를 함께 보관해야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종지부를 찍어 주길 기대하고 있다.

컴퓨터산업부=심규호기자@전자신문, khs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