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시각장애인이 오픈 XML에 거는 기대

 약 1년 전인 2007년 4월 시각장애인 두 명이 사법시험 1차에 합격하는 ‘기적’을 이뤘다.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이들의 사법시험 1차 합격이 당시 국내 모든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들은 주변의 도움을 받아 두꺼운 법전과 수험서를 일일이 워드 문서로 입력하고, 컴퓨터를 이용해 이를 다시 음성으로 전환해 들어가며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워드 파일을 음성으로 전환한 법전은 테이프에 녹음된 소리와도 같이 자신이 원하는 부분을 찾으려면 처음부터 일일이 들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들이 사법시험 1차 합격을 위해 쏟아 부은 노력이 어느 정도일지 상상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지난해 가을 치러진 사법시험 2차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들이 고배를 마신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같은 양의 학습을 하기 위해 몇 배의 노력을 경주해야 했다는 것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음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음성 파일도 일반 서적처럼 목차를 듣고 원하는 부분을 지목해 곧바로 찾아가 들을 수 있다면 학습효율이 훨씬 높아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지난 1월 데이지 컨소시엄이 마이크로소프트와 공동으로 오픈 XML 문서를 이용, 데이지로 변환할 수 있는 MS워드용 데이지 포맷을 개발, 발표한 것은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데이지(DAISY:Digital Accessible Information SYstem)란 국제 독서장애인 디지털 문서 포맷이다. 1988년 스웨덴에서 디지털시대에 가장 큰 정보접근의 장애를 갖고 있는 시각장애인과 일반 인쇄물을 읽는 데 장애를 갖고 있는 독서장애인(print disabled people)을 위해 개발, 보급을 시작했으며 1996년 정식으로 영국 왕립시각장애인협회 등 6개 시각장애인 점자도서관을 중심으로 국제 데이지 컨소시엄을 결성했다. 현재는 한국점자도서관을 비롯한 14개 국가 점자도서관과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23개 IT기업이 참여해 데이지 관련 기술표준 제정, 저작도구 및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제작, 보급하고 있다.

 데이지의 장점 중 하나는 목차를 구분해 변환함으로써 시각장애인과 독서장애인도 문서의 원하는 부분을 마음대로 찾아서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이다. 이는 독서장애인의 가독성과 이해도를 훨씬 향상시켜 주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시각장애인과 독서장애인에게는 필수불가결한 소중한 정보획득 수단이 되고 있다.

 이제까지 데이지 규격으로 책을 제작하기 위해서 문서를 작성할 때는 ODEF 형식의 스타 워드로 작성된 문서를 사용했는데, 스타 워드는 사용자가 별로 없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반면에 오픈 XML 문서 포맷을 이용한 데이지 포맷 개발은 디지털 토킹 북을 제작하고 이용하려는 점자도서관을 비롯한 관련 기관이나 시각장애인에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앞으로 이를 통해 보다 용이하고 신속하며 훨씬 방대한 양의 데이지 도서 제작으로 우리 시각장애인과 독서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이 크게 향상될 것이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더 많은 시각장애인과 독서장애인이 사법시험과 같은 ‘꿈’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올 4월에는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 적극 요구된다. 하지만 그러한 규제 위주의 장애인 차별금지법 이전에 사용 가능한 기술이라도 충분히 활용해 나가는 풍토가 된다면 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은 훨씬 더 개선될 것으로 믿는다. 이러한 차원에서라도 오픈 XML의 표준화가 신속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육근해 점자도서관장 youk@kbll.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