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시장은 `낯선 가전`으로 열어라

 ‘스페인, 중동, 아프리카….’

 ‘낯선 나라’가 우리 가전업체의 블루오션으로 떠올랐다. 해외 수출의 공략대상은 상대적으로 친숙하고 규모가 큰 미국·일본·중국 등 시장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많은 업체가 같은 지역을 노린만큼 경쟁이 심하고 공급이 포화 상태에 이른 사례가 많다. 제3국으로 나간 업체는 익숙한 시장 전략 대신 철저한 현지화로 해당 지역을 점령했다.

웅진쿠첸(대표 홍준기)은 밥솥을 들고 스페인을 찾았다. 가장 한국적인 가전인 밥솥으로 쌀 문화권이 아닌 스페인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스페인은 가정에서 육류를 조리할 때 가스압력솥을 쓴다. 회사는 우리나라의 밥솥과 비슷한 원리를 이용한 점을 간파, 2004년 ‘쿠킹로봇’이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내놨다. 기능은 밥을 짓는 용도에서 확대, 만능조리기를 타이틀로 달았다. 쿠킹로봇으로 만들 수 있는 현지 요리 1000여개를 개발해 요리책을 만들어 제공했다.

 시장 반응은 폭발적이다. 2006년 1만8000대를 팔았고 이듬해 3배 이상 늘어 6만대를 팔았다. 올해 2월 기준으로만 3만대를 수출했다. 기존 중국·일본·동남아 등 쌀 문화권 위주로 밥솥을 수출한 기존 밥솥 업체와 확연히 구분되는 행보다.

 대우일렉트로닉스(대표 이승창)는 지난달 암만·사우디·이집트 등 아프리카 중동 시장의 주요 거점을 돌며 ‘2008 아중동 서비스 클리닉’을 실시했다. 냉장고·TV·세탁기 등 거점별 주력 모델 및 신제품에 대해 집중적인 교육을 진행했다. 수출 사업에 기여를 톡톡히 하고 있는 이 지역에서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이 회사는 중동지역 특화 모델로 ‘자물쇠 냉장고’를 출시해 꾸준한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석유보다 물이 비싼 중동은 냉장고 문을 자주 여닫는다. 집 안의 가사 도우미가 식수를 가져가는 일도 많다. 회사는 지역 특성을 감안한 제품으로 현지인들의 마음을 샀다. 사우디 바이어들은 이제 자물쇠가 안 달린 냉장고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 이 밖에도 파란색을 좋아하는 중동지역의 선호에 맞춰 TV를 끈 상태에서 브라운관색이 파랗게 보이는 ‘블루TV’, 이슬람교도를 위한 ‘코란TV’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강희찬 대우일렉 이사는 “미국과 유럽은 시장 규모가 크지만 이미 다수 업체의 진출로 포화상태나 다름없다”며 “중동 및 아프리카는 신규 수요가 많고 경제 규모가 급격히 커지고 있어 수출 사업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차윤주기자@전자신문, chayj@

◆KOTRA “신흥시장 소비트렌드 변화에 주목하라” 

“흑인 중산층의 구매력을 자극하라.” “젊은 소비자들의 현대적·감각적 소비가 늘고 있다.”

KOTRA(대표 홍기화)는 고유가·고원자재가에 힘입어 빠른 경제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이머징마켓에서의 시장 확대 기회를 국내 기업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카자흐스탄, 터키, 베트남 등 20개 해외 유망 신흥시장의 무역관을 조사해 ‘이머징 마켓 10대 소비트렌드’를 12일 발표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통적으로 주류 고객층에 끼지 못했던 흑인 계층이 힘있는 소비자로 급부상했다는 점이다. 남아공 흑인 중산층의 구매력은 백인 계층의 77% 수준까지 접근했다. 정부의 흑인경제 육성정책(Black Economy Empowerment)에 따라 이들 계층의 지속적인 소득증가가 구매력 상승으로 이어진 것이다. 알제리에서도 대학 강의실의 절반을 여성이 채우고, 병원 레지던트의 둘 중 하나도 여성이 차지하면서 이른바 ‘알파걸’들이 신흥 구매층으로 부상했다.

어깨엔 노트북, 휴대전화 등을 담은 가방을 메고 아이팟을 귀에 꼽고 다니며 스타벅스에서 아이스크림을 마시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신흥시장을 뒤덮고 있다. 터키에서는 MP3와 휴대폰 이용을 돕기 위해 커뮤니케이션 포트를 설치한 다목적 배장이 젊은층에서 급속도로 유행을 탄다.

이같은 이머징마켓의 소비패턴 변화에 따라 다국적 기업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필립스는 인도 인구의 80%가 아직 농촌에 살고 있고, 실내에서 조리한다는 점을 착안해 유독가스 배출을 90%나 줄인 실내용 우드스토브를 개발해 출시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KOTRA는 신흥시장에서 △가격에 민감하지만 가치 중심의 소비 확대 △유아·어린이 제품 소비 확대 △새로운 유통채널의 등장 △고급화 바람 △웰빙 관련 소비 확대 △의료비 지출 증가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과 소비 증가 등을 변화상으로 꼽았다.

정호원 KOTRA 통상전략팀장은 “이머징마켓 신 소비자의 구매력이 급상승하고 있으나 몇몇 글로벌화된 기업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 제품 브랜드 인지도가 아직은 낮은 수준”이라며 “향후 이머징마켓의 핵심 소비층이 될 중·상류층을 공략하려면 인지도 제고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진호기자@전자신문, jho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