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가전 제품 기사를 쓰기 위해 벤치마크 회사를 찾았다가 다소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에너지 장치 부문에서 꽤 유명한 회사가 유럽 수출문을 두드렸다가 ‘퇴짜’를 맞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제품의 외관, 성능 등에서 이미 국내에서 인정받았던 제품이지만 여기에 사용되는 산업용 소프트웨어(SW)가 까다로운 인증 시험을 거치지 않았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이 업체는 억울했지만 객관적으로 제3자가 봐주지 않은 검사를 인정하지 않는 선진국의 분위기를 미처 몰랐다.
중소 가전 업체들도 이 업체와 별로 다른 게 없어 보인다. 취재차 회사를 방문해서 “성능을 보장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대부분은 “저희가 몇 달 동안 실험을 해봤는데요”라면서 말을 시작한다. 자기들의 실험실 공간에서 어쩌면 이상적인 조건에서 ‘완벽하게’ 작동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름에 50℃까지 올라가는 차 안, 먼지가 많은 공간 등에서도 자사의 제품이 제 성능을 발휘한다고 자신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품질은 떨어져도 싸구려로 승부를 거는 중국과 치밀함으로 무장해 고가 시장을 점유한 일본 사이에서 생존하려면, 우리 중소기업도 품질의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품질을 시험할 때 최소한의 규정만 맞추면 된다는 생각보다는 최대한 까다롭게 해 최악의 조건에서도 제품이 성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최악의 조건을 견뎠다는 것을 인증 전문업체 등을 통해 보증받는 등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소비자는 믿고 살 것이다.
인터넷이나 전자상가에서 중소기업 제품을 살 때, 외부 인증 마크를 자신 있게 붙인 제품을 만나보고 싶다. 세계 최강의 통신서비스와 휴대폰 산업을 만들어낸 까다로운 국내 소비자에게 인정받고, 세계시장으로 나아가려면 스스로 시험에 엄격한 중소기업 경영자가 많았으면 한다. 대기업의 횡포에도 시장에서 인정받으려면, 아는 사람들끼리 시험하고 인증해주는 제 식구 감싸기식 품질 인증에서 이젠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김규태기자<디지털산업부>@전자신문, s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