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CEO] 김영민 삼보컴퓨터 부회장·셀런 사장

[파워 CEO] 김영민 삼보컴퓨터 부회장·셀런 사장

 밤과 낮의 길이가 같고 겨울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24절기의 하나. 그와의 만남은 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리면서 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해지는 춘분점에서 이뤄졌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약속장소를 기억하지 못했네요.”

 김영민 삼보컴퓨터 부회장 겸 셀런 사장(41)은 미안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오전에 약속한 장소를 바쁜 업무로 인해 헷갈린 탓일 게다. 삼보컴퓨터를 인수하며 동분서주하니 그럴 만도 하다. 옛 사람들은 춘분을 가리켜 “하루를 밭 갈지 않으면 일년 내내 배부르지 못하다”고 했듯이 그도 춘분을 농경 일로 삼고 씨앗을 뿌렸으리라.

 “삼성전자·LG전자가 삼보의 PC를 거울삼아 만드는 날이 올 거예요. 머지않았어요.” 미소를 머금은 그의 입가에는 비장함이 가득했다.

 사무실 분위기는 차분하면서도 분주했다. 각각의 회의실은 빈 곳이 없었다. 온풍기를 켜지 않았는데도 토론과 회의 열기로 후끈했다. 그는 안산과 송파, 용산을 홍길동처럼 다닌다. 삼보와 셀런, 그리고 브레인 전략기지인 용산사무실을 오가며 경쟁력 갖추기에 여념이 없다.

 “셋톱박스요? 컨버전스입니다.” 아무 차나 다 끓여내는 싸구려 쇠 주전자가 아닌 고급 다기와 마찬가지로 PC와 함께 하는 컨버전스되는 셋톱박스를 만들어내겠다는 의지다. 브레인 전략기지인 용산에서 춘분을 화제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감으로 사업을 시작하다

 그는 술과 담배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아 하지 않는다. 골프도 안 한다.

 “할 줄 아는 게 일밖에 없나요?”라고 묻자 수십년간 엔지니어라는 수식어가 이제는 더욱 익숙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김 부회장은 대학시절 때부터 사업에 뛰어난 수완을 보였다. 대학원 재학시절인 1990년에 PC를 조립해 판매했다. 남들은 취업준비로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할 때 김 부회장은 PC와 씨름했다. 돈도 많이 벌었다. 한 대 팔면 50만원 정도 남았다. 애플PC 한대 가격이 100만원 정도 하는 시대에 조립PC 사업을 하는 사람이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재미로 해 본 사업이 이제는 본업이 됐다.

 대학원 전기공학박사 과정을 수료하던 1993년도에 병역특례로 대우전자 모니터연구소에 입사해서 1999년까지 약 6년간 근무했다. 소중한 경험이었고 또한 셀런을 있게 한 곳이기도 했다.

 “박사요? 하하하, 전기공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지만 PC 모니터 박사가 됐어요.”

 대학원에 다니면서 갖가지 개발 용역을 도맡아 했다. 특히 대우전자에서 다양한 모니터를 개발, 분석도 해봤다.

 “돈을 벌어야 했지요. 이제는 나도 자체 아이템을 가지고 대량사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셀런을 세우게 됐습니다.” 자신이 있었다. 타고난 사업수완이 있었기에 자신을 믿었다.

 ◇시련은 있지만 좌절은 없다

 1999년 셀런TV를 설립했다. 인터넷TV 사업을 시작했는데 경영을 너무 몰랐다. 조그만 구멍가게로 갖게 되면서 자신감부터 감이 달랐다. 이제는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인터넷TV 시장이 형성되기 전이어서 매출도 없었다. 남들보다 먼저 앞을 내다보는 시각이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돈을 빌려 직원들 급여를 지급했다. 주주들이 자금 회수를 요구해왔다.

 “하루를 30시간처럼 살았습니다. 돈이요? 정말 무서웠지요. 먹고 자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정말 사업에만 매달렸습니다.”

 생활의 무게감이 너무 무거워 마음은 버석버석 말라만 가고 머리와 어깨는 자꾸만 아래로 푹푹 꺼져만 갔다. 배낭을 하나 달랑 메고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천상 사업꾼이었다. 하루를 30시간처럼 사는 것이 그의 에너지를 바닥나게 하지 않는 노하우였다.

 2004년부터 흑자가 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저에게는 소중한 경험이 됐습니다. 사업을 하는 데 호소는 필요가 없었지요. 돈과 경영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돈을 돌려달라고 나섰을 때 정말 원망스러웠습니다.”

 ‘조금만 더 하면 잘 할 수 있을 텐데 왜 자금회수를 할까?’ ‘본인들이 투자해놓고 왜 돈을 돌려달라고 할까?’ 이런 의구심도 들었다. 이제는 그 이유를 안다. 투자할 만한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역지사지가 큰 교훈이 됐습니다. 사업이 안 돼서, 정말 돌려줄 돈이 없을 때까지 투자자에게 최선을 다해 이익을 나눠 줘야한다는 의무감을 그때 알았습니다.”

 과도기를 배움으로 극복한 그였다. 

 ◇사업은 하나의 신뢰다

 “사람도 돈도 모두 신뢰로 만들어집니다.”

 김 부회장은 아직 셀런이 시장에서 인정을 못 받고 있는 것에 대해 소비자의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고 선택하면 언젠가는 시장의 믿음을 얻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기회를 찾고 발굴하고 결정해 나가는 것이 회사의 ‘신뢰 쌓기’라는 것이다.

 일본은 품질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시장이다. 프로젝트를 하려면 최소 2년이 걸린다. 신뢰를 쌓으면 평균 10년은 계속 거래를 한다. 셀런은 지금까지 일본업체와 10여년 이상 거래한다.

 “남들이 보기에 M&A도 잘하고 공격경영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셀런은 상당히 보수적인 기업입니다. 삼보컴퓨터를 인수할 때도 그랬지만 돌다리도 두들겨 건너는 것이 제 경영방침입니다.”

 삼보를 인수할 때 산업은행과 기업은행도 50%의 지분을 투자했다. 보수집단인 은행이 선뜻 투자에 나선 것은 삼보의 미래가 보였기 때문이다.

 회사는 수익창출이 가장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속적으로 이윤을 창출해 내는 연속성의 기업이 돼야 하고 그 수익을 사회에 되돌려 줘야 한다는 것.

 김 부회장은 셀런은 단순한 셋톱박스 업체가 아니라고 말한다. 솔루션 개발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고 솔루션 매출도 늘어나고 있다. 박스장사만 하면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턴키로 공급하는 사이트를 중심으로 경영의 집중과 선택을 택했다.

 “평생을 함께 할 친구를 만들고 싶다면 먼저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친구가 되어주세요.” 머금은 입가에 행복함이 가득 묻어났다. 

 ◇골프는 No, SF영화는 OK  

그의 취미는 음악과 영화감상이다. 특이했다. 대부분의 CEO는 골프와 같은 스포츠를 취미로 갖고 있지만 그는 달랐다. 매트릭스 같은 상상력을 키워주는 SF영화를 즐겨 본다. 천상 엔지니어다. 음악도 역시 정적인 클래식을 좋아한다. 대학 때 방송국 엔지니어 출신이어서 이젠 클래식이 몸에 배어 있다.

 삼보를 인수하고도 왜 직급이 부회장이냐고 묻자 “제 주변에 성공한 연세 높은 분들이 회장으로 계신데 감히 어린 나이에 회장으로 올라서기에는 쑥스럽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겸손함이다. 직함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성공한 회장이 많은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늙어서도 계속 연구개발분야에 몸담고 있을 겁니다.” 노후의 모습을 상상해 달라는 질문에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사실 인공지능 분야에 관심이 많다. 셋톱박스와 특별히 관련이 없지만 인공지능이 본인에게 딱 맞는 적성이란다. 무엇인가 진화에 의해서가 아닌 발견에 의해서 인공지능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SF영화를 좋아하는 부회장다운 생각이다.

 “단기적으로 회사를 매각하고 단기적인 자금 회수 경영이 아닌 장기적인 계획에 의해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장기적 비전을 가진 사업가로서 실적으로 시장에 보여주겠습니다.”

 셀런 김영민을 볼 때 ‘롱텀’(장기적인) 파트너로 보아 주기를 기대한다는 의미다.

 ‘10년을 투자할 주식이 아니라면 단 1분도 들고 있지 말라’라는 워런 버핏의 말을 인용하는 그의 얼굴에는 강인함까지 엿보였다.

 “다섯 살 된 어린 딸과 아내에게 가장 미안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일 때문이라는 핑계로 많은 시간을 함께 못하고 있지만 시간을 내서 꼭 여행을 갈 계획입니다.”

 일은 삶의 귀한 양념이다. 껍질 벗겨져 눈물나도록 시린 양파일 수 있고 물엿 같은 달콤함일 수도 있다. 행복한 삶의 쉼터, 가족. ‘일벌레’인 김 부회장이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올 가을에는 보고 싶다.

 ◇김 부회장은…

 무등산 수박으로 유명한 광주가 고향이다. 1967년 9월 10일생이다. 전남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김 부회장은 같은 학교에서 전기공학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천성이 엔지니어다 보니 병역특례로 대우전자 모니터연구소에서 약 6년간 근무했다. 이후 지난 1999년 현 셀런의 전신인 티컴넷을 설립, 인터넷TV 분야에 뛰어들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SF 영화를 좋아한다. 친구 같은 아내와 자신을 쏙 빼닮은 다섯 살 된 딸이 무척 자랑스럽다. 기업을 하면서 얻은 게 있다면 사업과 돈, 사람은 모두 신뢰에서 나온다는 ‘신뢰경영’이다.

 김동석기자@전자신문, ds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