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 높은 물가 관리로 글로벌 위기 돌파.”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3일 “미국에서 시작된 위기상황으로 당장 서민생활에 피해가 닥치고 있다”며 “물가안정이 7% 성장이나 일자리 창출보다 더 시급해진 상황”이라는 발언이 나오자,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경제당국이 비상이 걸렸다. 경제 성장과 물가안정을 놓고 벌어지던 논란은 물가안정 쪽으로 기울게 됐다. 경제당국은 생필품 물가 관리 강화는 물론이고 수면 아래로 들어갔던 통신요금 인하 등 다양한 물가안정 카드를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물가 압박에 일보 후퇴=기획재정부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대내외의 좋지 않은 경제 여건에도 불구하고 올해 6% 안팎의 경제 성장을 목표치로 제시했다. 그러나 고유가는 물론이고 원자재와 곡물가격도 급등세를 지속, 물가가 들썩이는 가운데 경기 부양까지 겹치면 물가 불안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강하게 제기돼 왔다.
새 정부 출범 뒤 환율이 급등했는데 환율 상승으로 수출이 늘어나면서 얻는 이득보다도 수입물가 급등으로 국내 경제가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게 제기됐다. 환율에 손을 대면, 수출전선에 차질이 생긴다. 결국 이명박정부는 환율이나 금리에 손을 대기보다는 유통 구조상에서 실질적 물가를 억제하는 방식을 택할 전망이다.
◇통신사업자 요금인하 압박받을 듯=25일 열릴 국무회의에서 다양한 물가안정책이 나올 전망이다. 국무회의에서는 주요 생필품 50지수 등 서민생활과 관련이 큰 품목에 대해 강력한 억제책이 나올 예정이다. 금리 인하 등 물가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조치도 당분간 실행을 미룰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서민들이 많이 쓰는 품목에 대해 지수를 만들어 놓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통구조 개선이나 매점매석 단속, 대외개방 등 행정력을 총동원해 물가를 잡아놓는 전방위적인 전략이 구사될 수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소비자 물가지수의 보조지표로 쓰이는 생활물가지수를 구성하는 152개 품목 가운데 소득계층 하위 40%가 많이 쓰고 지출 비중이 높고, 물가 체감도도 높은 것들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통신사업자에 대한 통신요금 인하 압력도 거세질 전망이다. 직접적인 압력을 통한 요금인하 유도는 어렵겠지만, 여론 압박에 따라 통신사업자가 스스로 요금 인하를 유도하는 방식은 가능하다.
◇정부 “두 마리 토끼 다 잡겠다”=새 정부는 지금까지는 고성장이 지상과제였으나 대통령 발언으로 앞으로는 정책 선택에서 다소 유연해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정부가 성장정책을 오랫동안 뒤로 미뤄놓을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 물가와 성장, 국제수지는 상황에 따라 순서는 달라질 수 있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사안들이라는 재경부의 설명이다.
24일 김규옥 기획재정부 대변인도 “아직까지 성장률 목표 하향을 고려하고 있지 않으며 재정부 기본 방침은 성장과 물가 어느 하나라도 놓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해 경기부양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따라서 재정부는 물가상승을 초래할 수 있는 금리인하 대신 규제완화나 세금 부담 완화 등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에 한층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권상희기자@전자신문, shkw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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