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40년 전인 1968년 벨기에에 출장갔던 어느 한국인 실크 직조기술자가 ‘성모대성당’에 전시된 한 그림 앞에 한 시간이 넘게 서 있었다. 아니, 그 작품 속에 처참하게 그려진 한 인물 ‘예수’에게 온 정신을 빼앗겼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 작품은 벨기에 7대 보물 중 하나라는 루벤스(1577∼1640)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수출주문 받으랴 납기 지키랴 회사일로 정신없이 지내던 그는 실크패션의 본고장에 오게 돼 그림 속에서 특이한 한 인물을 만난 것이다. 성당 안으로 따뜻하게 스며드는 가을 햇살에 반사되는 옅은 아지랑이가 십자가 위에서 끌어 내려지는 예수의 꺾인 허리를 입체감 있게 만들었기 때문일까.
그는 그 그림에서 충격과 영감을 얻어 귀국한 후 워너 셔먼(1897∼1968)의 ‘The Head of Christ’(1941)를 면직 캔버스에 형형색색의 비스코스와 레이온사로 한 땀 한 땀 뜨는 주단기법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일일이 손으로 짜야 하는 노력과 엄청난 시간이 필요한데다 사업이 너무 바빠 완성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려 그의 작업실에 감춰지게 된다. 그러는 동안 그는 30대 청년에서 70대 노년이 됐고 교회에 나가게 됐다.
몇 년 전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돼 이웃에 사는 노부부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남편분이 우리나라 실크산업의 원조이자 실크디자인의 산증인인 조용민 선생(당시 76세)이었는데 우리 부부에게 줄 것이 있다고 했다. 그 선물이 바로 40년 만에 완성된 직조(織造) 작품 ‘The Head of Christ’였다.
예수님 초상이야 어느 교회나 성당에서든 흔히 볼 수 있지만 이 소장품은 아침에 볼 때, 한 낮에 볼 때, 조명을 통해 볼 때 색상이 다르다. 때로는 하얗고 검게, 어느 때는 푸르고 붉게 늘 잔잔한 인상으로 나를 바라보고 만나준다.
이 작품은 매일매일 IT라는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채로 귀향하는 내게 ‘수고했다, 힘내라, 분노하지 말라, 웃고 또 웃어라’는 메시지로 위로·기쁨·신뢰를 준다. 이 그림이야말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애장품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왜 조 선생이 이 귀한 그림을 내게 주었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귀한 선물을 값없이 주신 조용민 선생님, 김영자 여사 부부에게 감사드린다. 부디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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