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전수전 다 겪은 벤처 1.5세대 김진태 이수유비케어 사장(44). 지난 94년 벤처 1세대 간판 메디슨에서 이수유비케어 전신인 메디다스를 사내 벤처로 창업한 이후 15년 동안 기업을 운영하면서 그는 적지 않은 풍파에 시달렸다. CEO로서 순탄하게 활동한 지 10년만에 불어닥친 2002년 모기업 메디슨의 흑자 부도. 그리고 든든한 후원자였던 모기업이 흔들리면서 잇따라 터진 적대적 인수합병(M&A)·우호적 M&A 등. 지난 6년은 고통과 교훈을 동시에 안겨준 시기였다. 특히 대주주가 메디슨·이수그룹·SK케미칼 등 3번이나 바뀌는 대변혁 속에서도 그는 전문경영인으로서 CEO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다.
지난 18일 오후 구로디지털단지 ‘우림 e비즈센터 10층’ 사옥에서 그를 오랜 만에 만났다. 그런 탓일까. 김진태 사장 머리에는 ‘서리’가 눈에 띄게 보였다. 당초 김진태 사장과의 인터뷰 약속은 SK케미칼의 이수유비케어 경영권 인수 발표 하루 전 날인 13일. 숨기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 하지않는 김 사장 성격상 기자와의 인터뷰 약속 일정을 제대로 지켰다면 기자는 SK케미칼의 이수유비케어 경영권 인수 분위기를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을 법했다. 김진태 사장은 “대주주가 이수유비케어 대표 자리를 보장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자를 사전에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워 불가피하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며 뒤늦게 양해를 구했다.
# 벤처 1.5세대와 대기업의 만남
중요한 사안인 만큼 기자는 제일 먼저 SK케미칼의 이수유비케어 경영권 인수로 화제를 돌렸다. “SK케미칼이 향후 핵심적으로 추진하는 사업 축은 헬스케어와 환경 분야입니다. SK케미칼이 헬스케어 사업(의약품)을 추진하다 보니 헬스케어 분야의 네트워크와 인프라가 강한 기업을 찾게 됐고 그게 바로 이수유비케어였습니다.”
그는 “SK케미칼은 토털 헬스케어 기업의 실현을 위해 의료정보화 솔루션 분야의 대표기업인 이수유비케어를 인수해 헬스케어 사업 기반을 강화할 것”이라며 “지난해 8월부터 SK케미칼이 접촉을 해왔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이번 SK케미칼 등 SK그룹 측과 사업적 시너지 부분이나, 재정적인 부분에서 커다란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SK텔레콤·SK네트웍스 등 SK그룹 관계사의 우수한 인프라를 적극 활용, 비전사업인 u헬스케어를 활짝 꽃피운다는 계획이다.
그는 “SK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헬스케어 사업 중심에 이수유비케어가 뛴다”며 “벤처 1.5세대인 이수유비케어와 국내 대표 대기업 SK케미칼이 우호적으로 만나 멋진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 모기업 부도·적대적 M&A 등 거친 풍파
SK케미칼로 편입하기 전까지 김진태 사장에겐 잊지 못할 세 가지 대형 사건이 있다. 우선 모기업 메디슨의 흑자 부도다. 이전까지 김 사장은 승승장구했다. 의원용 전자의무기록 ‘의사랑’을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이로 인해 코스닥 시장 개설 이듬해인 97년 상장에 성공했고 99년 의약분업으로 약국 정보화 시스템도 출시, 성공을 거뒀다. 의료정보화 시장에서 부동의 1위이자 대표 주자로서 입지를 구축했다.
하지만 모기업 메디슨이 넘어지면서 고난이 곧바로 시작됐다. 그야말로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김 사장은 “신규 대출 신청은 거절 당하고 대출금 상환 독촉에 시달렸다”며 “비즈니스 위기가 아닌 재정적 위기에 봉착, 일부 사업을 중단하고 인력도 30% 감원했다”고 말했다. 주식 등 기업 운영에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은 모두 내다 팔았다. 김 사장은 이 덕분에 금융자본 시장의 매서움을 뼈저리게 느낀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한다.
그 뒤로 흑자로 전환되는 등 기업이 안정화되나 싶더니 2004년 뜻하지 않게 엠디하우스란 기업에 적대적 M&A을 당할 처지가 됐다. 기업 문화가 이수유비케어와는 너무나 다른 기업이었다. 임직원들이 똘똘 뭉쳐 소액주주 의결권을 모으는 운동을 전개했다. 가까스로 적대적 M&A 시도를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적대적 M&A 상황에서 직원들이 주주들을 직접 만나러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소액 주주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주주들은 회사 영속성·가치상승 등 여러가지 의견들을 전해주었습니다. 주주는 바뀌어도 회사에 기대하는 바가 있고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내부 사람 중심의 사고가 아닌 외부의 시각까지 생각하는 균형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된 좋은 계기였습니다.”
# 제2 도약의 출발점에 서다
김진태 사장은 이수그룹을 2005년 새로운 대주주로 맞았다. 대주주 이수그룹의 등장은 그에게 큰 힘을 보태주었다. 그래서 김 사장은 당시 ‘비전 2010-트리플 1000’ 달성 목표를 세웠다. ‘비전 2010-트리플 1000’은 2010년까지 매출 1000억원, 자산 1000억원, 시가총액 1000억원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는 당장 실행에 옮겼다. 2006년 의약품 전자상거래 쇼핑몰 ‘메디온’을, 2007년 소형 의료영상저장시스템(PACS) 기업 ‘레이팍스’을 잇따라 인수, 사업 범위를 의약품 전자상거래와 디지털 영상장비 분야로 넓혔다. 올해 들어선 중소병원용 전자의무기록(EMR) 기업 인수도 추진, 현재 막바지 단계에 있다.
김 사장은 “병·의원, 약국 등 탄탄하면서 폭넓은 고객 기반을 토대로 의약품 및 의료기기 유통 사업과 u헬스케어 사업을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통의 핵심 테마는 고객맞춤형인데 메디컬쪽에서는 그런 흐름이 약하다”며 “고객과 오랫동안 쌓아온 관계와 지식을 통해서 ‘우리 고객에게 이것이 필요하겠다’란 생각으로 접근한다”고 덧붙였다.
올해 이수유비케어는 매출 500억원, 영업이익 25억원을 목표로 세웠다. 그는 “‘비전 2010-트리플 1000’ 달성이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 ‘비전 2020-트리플 1조’ 영그는 꿈
지난 14일 김진태 이수유비케어 사장은 새로운 대주주를 만났다. 대주주가 메디슨, 이수그룹에 이어 SK케미칼로 바뀐 것이다. 대주주가 바뀌면 대표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는 16년째 같은 벤처 기업의 선장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노하우를 물었다. “창업 당시 그리고자 했던 꿈과 비전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아직 그것이 완성되지 않았고 열정도 식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임직원과 주주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했다면 CEO로 계속 있지 못했겠죠. 실적도 있고 헬스케어분야에서 크게 뭔가 할 수 있는 시스템과 인프라를 준비해 놓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김 사장은 이수유비케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세 가지로 정했다. 헬스케어 홀딩컴퍼니를 세우는 것이다. 그는 “시장을 지배하는 기업이 기술을 지배할 수 있다”며 “기술을 갖고 있는 기업을 파트너로 삼거나 혹은 M&A함으로써 다양한 기업들과 협력, u헬스케어 시장을 열겠다”고 말했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벤처 기업 맏형으로써 벤처 기업들이 계속 태어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 계획이다. 규제나 제도를 풀어낸다거나 시장을 만들어 가는데 일조하겠다는 생각이다.
김 사장은 또 해외 시장에 눈을 돌리기로 했다. 국내 기업들이 EMR·PACS 등 우수한 솔루션을 보유하고 있는만큼 해외 파트너들을 찾아 다니면서 우리의 기술과 경험을 공급할 수 있는 길을 찾기로 했다. 김 사장은 또 u헬스케어 시장에서 메이저 플레이어가 되겠다고 한다. 그는 “SK그룹 임직원을 대상으로 원격 건강관리 서비스를 시범운영할 예정”이라며 “검진·콘텐츠·온오프라인 서비스 모델을 만들어서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세 가지 방향 속에서 ‘비전 2020-트리플 1조’ 달성이란 새로운 청사진을 구상 중이다. 그는 “이수유비케어를 2020년께 매출 1조원, 자산 1조원, 시가총액 1조원을 만들겠다”며 강한 의욕을 보였다. 지난 92년 이수유비케어 전신인 메디다스를 창업할 당시 그의 꿈과 비전이 여전히 살아숨쉬고 있는 것이다.
◇김진태 사장은
김진태 사장은 64년 9월생으로 서울대 제어계측학과 석사 출신이다. 그는 87년 11월 서울대에서 한국 최초 인공심장 개발프로젝트에도 참여한 바 있다. 그는 군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석사장교 시험을 봤는 데 탈락했다. 결국 지금의 운명을 정하게 된 메디슨 연구소에 89년 병역특례로 입사했다.
김 사장은 의원용 의료영상관리 시스템인 마이다스(MIDAS)를 92년 개발했다. 특히 손으로 쓰던 차트를 대체하는 전자의무기록(EMR) 솔루션 ‘의사랑’을 개발, 메디슨 사내벤처인 메디다스를 세웠다. 이로 인해 97년 6월 과학기술처의 IR52 장영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 사장은 94년 이후 사명과 대주주만 바뀌었을 뿐 지금까지 이수유비케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그는 현재 전자상거래협회·의료정보학회 부회장직을 맡고 다양한 대외 활동도 펼치고 있다.
안수민기자@전자신문, smahn@
사진=박지호기자@전자신문, jiho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