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관심이 4월 9일 총선에 쏠려 있는 가운데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등 17대 국회에 계류중인 IT 민생 법안이 대거 폐기처분될 위기에 처했다. 국회 임기가 2달여 남았지만 정치적 문제로 법안 통과를 위한 임시국회 일정이 불투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법안이 자동 폐기되면서 산업활성화에 발목을 잡는 한편 범죄예방, 개인정보보호 등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부분에서도 정책 공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30일 국회에 따르면 현재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 계류중인 IT법안은 총 111개에 달한다.
이들 법안이 이번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을 경우 오는 5월 29일 17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자동 폐기된다. 문제는 계류 중인 IT법안 대부분이 민생에 직결된 것이라는 것. 특히 전기통신사업법·위치정보법 개정안, 모바일산업진흥법 등은 산업계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만큼 폐기에 따른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17대 국회서 처리되지 못할 경우 다음 국회가 구성되는 오는 6월 이후 관계부처 협의, 입법예고, 규제개혁위원회 심사 등 모든 단계를 다시 거쳐야 하기 때문에 법안 제안 시점부터 따지면 1년 이상 지연 처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제4의 이동통신사업자 등장을 가능케하는 ‘전기통신사업법’의 경우 가상이동통신망(MVNO) 진출 선언을 한 사업자뿐만 아니라 콘텐츠사업자(CP), 가상사설망 구축 및 운영자(MVNE), 이통장비업체 등 IT업계가 대거 관련돼 있다.
MVNO 진출을 선언한 중소통신 사업자연합회의 관계자는 “이미 관련 업체와 양해각서(MOU)를 맺는 등 사업 추진을 서두르고 있지만 제도가 만들어지지 않아 구체적인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사업 시작이 늦어질수록 인건비 등의 부담이 커진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벤처기업들은 ‘정보화촉진 기본법’ 개정안이 처리되지 못한 것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개정안에는 신기술 인증제도와 신제품 인증제도 개정에 따른 지원책 등이 담겨있다. 이밖에 모바일특구 지정 등을 통한 산업 육성 방안을 담고 있는 ‘모바일산업진흥법안’ 처리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모바일솔루션 및 콘텐츠 업체들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법안 마련이 늦어지면서 국민 안전에 구멍이 뚫릴 위험도 제기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은 휴대폰 위치기반서비스(LBS)와 관련된 위치정보법이다. 현행 법에는 긴급구조기관만 위치정보를 획득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어 경찰은 이통사로부터 개인 위치정보를 확보할 수 없다. 최근 강력범죄의 예방수단으로 LBS가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IT를 활용한 안전 확보를 위해서 법안 통과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안광학 LBS산업협의회 사무국장은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 국회에 상정된 위치정보법 개정안 통과가 필수적”이라며 “법안이 빨리 처리돼 미국 E911처럼 효율적인 긴급구조 서비스가 시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통과되지 못해 정부의 개인정보 보호 강화 의지도 빛을 바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법안은 △개인정보 보호 규정을 위반한 전기통신사업자에게 가하는 처벌 수위를 높이고 △주민번호 대체 수단을 이용해 회원가입을 하도록 의무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행정안전부에서 관련 법 개정 의지를 밝혔지만 제도 시행 지연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황지혜·이수운기자@전자신문, got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