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특검의 장기화로 인한 중소기업의 피해 확산과 경제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삼성 협력사와 학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이들은 그간 삼성의 사주를 받았다거나 우군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몸을 낮춰왔지만 더이상 피해 확산이 곤란하다는 인식 아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특히 학계는 특검이 제대로 이뤄져야 하지만 경제 손실이 너무 큰 현실도 감안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 진보적 학자들과 장외공방도 예고했다.
◇협성회, 특검 조기 종결 탄원서 제출=삼성전자 1차 협력사 모임인 협성회 회장단이 중소기업중앙회 회장단과 함께 31일 서울 한남동 삼성 특검 사무실을 방문, 수사를 조기에 종결해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이는 협성회가 그동안 공식적인 활동은 자제해왔으나, 수사 연장 등 상황악화를 우려해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세용 협성회장은 “가만히 앉아서 걱정만 하기에는 중소기업의 피해확산 등 현실적인 문제를 두고볼 수 없었다”면서 “금형부터 시작해 제품생산·물류 등 제조업 일련의 과정들이 마비 상태”라고 토로했다. 특검 장기화로 삼성의 경영계획이나 투자 등 의사결정이 지연돼 협력사가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또 “1차 협력사는 물론이고 2·3차로 내려갈수록 상황은 더욱 안 좋다”면서 “실제로 피해사례가 속출하는 실정”이라고 호소했다.
이날 이세용 협성회장을 비롯한 협성회 회장단은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등과 함께 특검 사무실을 찾아 10만 서명서와 탄원서를 특검 측에 건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5단체도 오늘 오전 상의회관 중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삼성 특검의 조속한 수사 종결을 촉구할 예정이다.
◇일부 학계, “본질 잘못 짚으면 안 된다”=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회장 민경국 강원대 교수)는 오는 2일 제5회 자유주의 정책 심포지엄 주제로 ‘최근 삼성사태, 어떻게 볼 것인가’를 선정, 집중 논의한다. 김영용 전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전에 내놓은 발표내용에서 “삼성의 상속 및 비자금 문제는 사유재산권 위협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유사 사건 재발을 위해선 기업가가 소유한 유무형 자원의 사유재산권을 최대한 보호함으로써 사회·경제·법적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기화 전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 경제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이 크기에 특검이 제기된 의혹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하면 신뢰와 사법비용이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삼성사태가 본질을 잘못 짚어 교각살우의 치명적 오류가 드러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얼마나 심각하길래
#사례1. 반도체장비 생산업체인 A사. 삼성전자 12인치 반도체 투자 확충 계획에 맞춰 지난해 8월 설비 투자와 인력 확충에 들어갔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계획했던 투자를 진행하지 않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개발한 투자시설을 놀리고 있다. A사는 설비투자 등에 따른 손실이 12억원, 매출 감소 및 설비가동률 저하에 따른 기회손실이 37억원이라고 보고 있다.
#사례2. 금형업체인 B사는 삼성전자와 함께 TV용 금형 신기술을 개발, 삼성전자의 새 TV 모델 3종에 적용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특검의 장기화로 투자비 회수가 힘들어지면서 심각한 경영압박에 시달렸다. B사는 수주지연 손실금액으로 25억원, 설비 미가동에 따른 손실 등 기회손실금액으로 이미 15억원이 발생했다는 내부 분석이다.
◆"조사 장기화로 중기 피해 확산"
중소기업중앙회(회장 김기문)가 지난달 22일부터 24일까지 사흘간 삼성거래 협력사 122개사(반도체·LCD·무선 등 업종)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를 31일 발표했다. 특검 장기화 여파로 심각한 경영 애로를 겪는다는 삼성 협력사들의 하소연을 뒷받침했다.
92.6%의 응답기업이 특검 이전에 비해 현재의 경영상황이 ‘나빠졌다(매우 나빠졌다 38.5%)’고 응답했다. ‘좋아졌다’고 응답한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경영이 어려운 이유(복수응답)도 ‘삼성의 투자 미확정으로 인한 경영계획 차질(84.6%)’과 ‘수주 미확정에 따른 생산계획 차질(70.1%)’이었다. 삼성전자 납품 계획만 믿고 올해를 시작했으나, 특검의 장기화로 인해 경영 방향을 전혀 잡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협력사들은 ‘신규 설비투자 지연(60.7%)’ ‘신제품 개발지연(53.8%)’도 우려했다.
삼성 특검의 장기화 파장은 더욱 클 것으로 조사됐다. 조업중단 또는 폐업을 고려하는 업체가 11.8%였다. 감원 등 기업 구조조정도 84.9%에 이르렀다. 실제로 특검이 장기화되면 ‘신규설비 투자계획’을 보류 또는 취소하겠다는 응답이 93.3%에 달했다. 신규인력 채용 계획도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응답이 7.6%에 불과했다.
이창희 중소기업중앙회 조사통계팀 과장은 “특검이 장기화하면서 협력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됐다는 게 확실히 나타났다”면서 “조사는 1차 협력사가 대상이며 수많은 2·3차 협력사는 더욱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김준배·설성인기자@전자신문, j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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