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자주 했던 낱말 잇기 게임을 예로 들어볼까요?”
소프트웨어(SW) 업계의 한 CEO가 ‘기초’의 중요성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나라의 낱말 잇기는 단순히 단어 끝에 오는 글자로 시작하는 말을 찾는 게임이지만 SW산업의 전통적 강자라는 미국은 우리와는 사뭇 다른 게임을 가르친다고 한다.
우산을 예로 들어보면 우산에서 연상되는 단어가 뒤따라오는 낱말 잇기가 그것이다. 단순한 암기보다는 연상 게임을 한다는 것. 그는 연상과 창조를 중요시하는 교육이 바로 산업을 키우는 근간이 된다는 강조했다.
SW 산업의 핵심은 인재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바로 SW다. 그런만큼 사람의 아이디어에서 모든 것이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SW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바로 창조적인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2010년까지 국내 SW 분야 인력은 초급인력이 5200명, 중급이 7400명, 고급이 5500명 등 총 1만8100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창조적인 인재는 1∼2년 투자를 해서 길러질 수 없다. 기초인력양성에 충실해야 지식기반 산업 즉 SW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이유다.
◇초·중등 정보화 교육 바로잡아야=‘창조성을 키우는 교육’이라는 원론적인 이야기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가 지식 중심 사회로 가기 위해 바로잡아야 할 부문은 매우 많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컴퓨터 수업이라는 이름으로 정보화 교육을 하고 있지만 이러한 교육이 관련 산업인 SW 산업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컴퓨터 수업에서라도 학생들이 SW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고 SW를 개발할 수 있는 논리적인 사고체계를 기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초·중·고교 컴퓨터 학습 교과과정은 대부분 워드프로세서나 그래픽 편집 툴 등 상용화된 프로그램 활용방법을 배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학생의 기초적인 컴퓨터 실력 배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수업 커리큘럼도 문제지만 학년 진급과 함께 수준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에 되면 타자치기나 웹서핑 방법, 문서작성법 등을 배운다. 초등학교에서 기본적으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운다고 한다면 중학교에서는 원리를 배우고 고등학교에서는 응용을 하면서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그러나 컴퓨터 수업은 학년이 높아져도 좀 더 많은 사용법을 배울 뿐 응용하는 능력, 창작하는 능력을 가르치지 않는다. 수준이 점점 높아지면서 흥미를 끌어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권장우 정보통신연구진흥원 인력양성사업단장은 “우리나라가 IT 강국인 데 비해 IT 교육은 국·영·수 과목에 밀려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초등학교 때부터 근본적으로 문제해결 능력을 조금씩 키워가야 미래에 창의력을 요구하는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도 강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초·중등 컴퓨터 교육을 바로잡기 위한 일환으로 단계별 능력배양 위주로 학습 능력에 맞는 모델 교과서를 마련할 것”이라며 “기본적인 알고리듬 구조를 쉽게 풀어 설명해 학생들이 컴퓨터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익숙해지도록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산업 현실 맞는 대학 교육 필요하다=지난해 내셔널소프트웨어포럼에서 한 대학 교수가 일어나 목청을 높였다. 그는 “컴퓨터 공학과에서 알고리듬이나 프로그램 언어가 아닌 물리나 화학 과목을 통해 공학인증을 받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대학에서 SW 기초를 다질 수도, 그렇다고 산업체 수요에 부응하기도 힘든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교육시스템을 시장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대학과 산업의 괴리가 산업에는 인력부족을, 대학에는 정원 미달과 미취업이라는 문제를 가져오게 됐다. 이러한 문제의 반성에서 출발해 교육체계를 수정하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우선, IT 현실에 맞는 공학인증체계를 만들기 위해 우리나라 정부와 미국·캐나다를 비롯한 7개국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컴퓨터·정보기술 분야 교육인증 국제협약체(가칭 서울어코드)를 결성하기 위해 7개국 정부 관료들이 서울에 모여 워킹그룹을 발족한 것. 워싱턴어코드로 불리며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현 공학인증체계는 기계와 토목 분야에 치중돼 있어 IT 분야에 적용할 만한 교육인증 체계를 만들기 위해 나온 것이 바로 서울어코드다.
특히 SW분야의 경우 기초를 다지기 위해서는 물리나 화학 같은 과목보다는 SW 엔지니어링과 알고리듬 등의 과목을 이수하는 것이 필요해 새로운 공학인증체계 개편이 절실했다. 워킹그룹 발족에 따라 IT 공학인증체계의 구체적인 틀과 인증체계 수립을 위한 계획은 올해 안에 나오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턴십 자체도 실질적인 실효를 거둘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개편되고 있다. 한국소프트웨어기술진흥협회와 한국정보산업연합회 등에서는 기업과 컨소시엄을 꾸리거나 기업과 대학의 풀을 만드는 방안으로 실무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가고 있다.
대학 교육 과정에서 이론뿐만 아니라 실무를 익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교수 임용 및 평가 제도를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현재 대부분의 대학이 교수를 임용할 때 산업 실무경력보다는 논문 실적 등 이론 측면을 중시하기 때문에 교수가 논문작성에 다수 석·박사 학생을 투입해 시장에 역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는 IMPACT 프로젝트를 이용해 54개 과목의 강의 교안·실습환경·조교 훈련·강의 노트 등을 지원하고 매년 갱신하고 있다.
◇아키텍트 인재를 키우자=산업계는 아키텍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갓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운 초급인력은 그나마 수요와 공급이 맞는 수준이지만, SW의 구성을 짤 아키텍트 인재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초급 인력을 위한 강좌는 정부 각 부처 지원으로 풍족했지만, 아키텍트 인재를 위한 강좌는 국내 통틀어 손꼽을 정도다. 업무가 전문화되지 않은 속에서 아키텍트 인재보다는 코딩부터 여러 업무를 다양하게 할 인재를 더 원하는 것도 기업 자체적으로 실무 속에서 아키텍트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데브피아 아키텍쳐 포럼의 손영수 시숍은 “아키텍트 인재는 수업을 거쳐 길러진다기보다는 회사의 노하우로 전해지는 것인데 국내 기업은 아키텍트를 키우기보다는 다목적 인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윤태권 한국소프트웨어기술진흥협회 사무국장은 “국내 아키텍트 인재가 매우 부족한 수준”이라며 “창조적인 SW는 아키텍트가 만들어내는만큼 이들을 산업에서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지금
소프트웨어(SW)는 무공해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산업별 부가가치 자료에 따르면 SW의 부가가치는 62.7%로 서비스(50.1%)와 제조업(27.4%)을 압도한다. 전 세계적으로 SW를 육성하려는 이유다. 전통적인 SW 강국인 미국을 비롯해 SW 인력 양성을 위한 각국의 노력은 뜨겁다. SW 산업 육성은 SW 인력양성과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은 SW 인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키워낼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기 위해 30개 대학이 6개 그룹으로 나누어 본격적인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각 그룹은 나고야·간사이 등 6개 지역으로 나누어 각 지역 산업과 밀접한 SW 기술을 발굴하고 관련 인력을 키울 방안을 찾게 된다.
이 프로젝트에 선발된 30개 대학은 전국 200여개 대학에서 엄격한 기준을 거쳤다. 이들이 SW 인재 양성에 발벗고 나선 것은 SW 산업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눈을 떴기 때문이다. 이는 전통 제조산업과 기초기술에 강한 일본도 이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SW 발전 없이 불가능하다는 반성에서 나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본은 최첨단 SW 공학확립과 IT 인재 양성 환경 조성에도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은 기초연구 프로젝트에 연방기금을 장기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기초연구프로젝트에는 아키텍트 인재를 양성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아일랜드는 SW만을 위한 전담 기구가 있다. 이로써 인력을 집중 양성하고 이에 필요한 정책도 적극적으로 지원 중이다. 중국은 SW 기업의 연구개발 기구를 설립해 인재 양성에 나섰다.
석·박사 과정에서 기업과 연계해 실무진을 양성해 가는 사례도 찾을 수 있다. 프랑스는 연구개발 능력이 있는 중소기업이 한 명 이상의 박사인력을 고용하면 고용 첫해에 기업에서 발생하는 비용의 50%를 지원한다. 또 기업의 응용 연구 프로젝트에 박사과정 학생을 고용해 기업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되면 해당기업과 박사과정 학생에게 최장 3년간 1만4000유로를 지원하기도 한다.
박사과정은 실무를 익혀 산업에서 필요한 인재를 성장할 기회를 맞게 되며, 기업은 인력 부족을 해소한다. 이탈리아는 공공연구소 연구할당과 중소기업 연구자고용을 통해 중소기업이 박사 인력을 고용하면 법인세 감면혜택을 주기도 한다.
이단형 ICU 교수는 “유레카 연구개발의 48%는 SW 프로젝트가 될 만큼 SW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다”며 “이러한 투자의 대부분이 인재를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용어설명:
아키텍트 인력이란 SW의 전체 구조를 그려낼 수 있는 인력을 말한다. 업무의 영역은 사용자의 요구사항을 분석해 이를 솔루션에 반영하는 것부터 어떤 단계로 개발해 나갈 것인지 전체 프로세스를 설계하는 것에 달하며,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최소 10년 이상의 경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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