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대국을 만들자](11)전자상가의 현주소

[콘텐츠 대국을 만들자](11)전자상가의 현주소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2007년 용산의 불법DVD 유통 현황

 전자상가는 불법복제의 온상이다. 과거에는 PC용 소프트웨어(SW)나 패키지게임이 불법복제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휴대형 게임기 소프트웨어와 영화 DVD가 차지하고 있다. 불법복제 콘텐츠를 구하고자 하면 없는 게 없다. 관계 당국은 일손 부족을 이유로 단속에 나서지 않고 있다. 지식경제 육성을 꿈꾸는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2008년 4월 대한민국의 전자상가는 여전히 지식경제의 핵심인 콘텐츠 산업을 뿌리부터 갉아먹고 있다.

 최근 용산전자상가 등 주요 대형전자상가에서는 웃돈을 주고도 휴대형 게임기인 ‘닌텐도DS’를 구하기 어렵다. 소비자가격 15만원 선인 닌텐도DS에 MP3나 동영상 파일을 듣고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R4칩을 더한 가격이 연초까지만 해도 20만원 수준이었지만 최근에는 25만원까지 폭등했다.

 일부 매체에서 보안성을 강화한 닌텐도DS가 나온다는 보도가 나오자 상대적으로 불법복제가 쉬운 기존 닌텐도DS를 미리 사두려는 사재기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단지 소문 하나에 구형 게임기 가격이 오르는 기현상이 현재 게임 불법복제의 현주소를 그대로 말해준다.

 휴대형 게임 SW 불법복제 현황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용산전자상가를 찾았다. 가장 최근에 만든 I몰 7층에 밀집한 게임 상가에 들어서자 없어서 못 판다는 닌텐도DS와 신형 발매 이후 인기가 다시 살아난 플레이스테이션포터블(PSP)이 눈에 띄었다.

 한 점포에 들어가서 닌텐도DS와 게임 SW를 사러 왔다고 문의하자 직원은 정품이 나와 있는 카탈로그를 보여줬다. “정품은 너무 비싸니 요즘 사람들이 많이 찾는 걸 보여달라”고 묻자 직원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곧바로 “게임은 몇 개나 필요하나요”라고 묻더니 “게임 50개와 메모리, R4칩을 더해 9만원”이라고 답했다.

 닌텐도DS용 게임 한 개에 대략 3만원으로 잡아도 150만원어치를 9만원에 얻은 셈이다. 용산전자상가에서는 닌텐도DS용 게임 정품을 사는 사람이 바보가 된 느낌을 받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은 소니의 PSP도 마찬가지다. 소니는 작년 가을 게임 SW 불법복제를 막기 위해 보안성을 강화한 신형 PSP를 출시했지만 이 역시 무용지물이 됐다. 다른 게임 전문매장에 들어가서 “PSP용 게임을 싸게 구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직원은 “PSP를 맡기면 개조해서 게임까지 넣어준다”고 대답했다.

 게임 2종류에 4Gb 용량의 메모리카드까지 더해서 비용은 5만원에 불과했다. 불법복제로 인한 저작권 침해도 심각하지만 PSP용 불법복제 게임 중에는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유해 게임이 다수 들어있다는 사실이 충격을 더했다.

 특히 ‘맨헌트2’처럼 표현의 자유에 너그러운 서양에서조차 판매금지된 잔혹게임도 돈만 내면 나이에 상관없이 판매되고 있다. 또 다른 매장에 물었더니 “잔혹한 게임은 물론이고 노출 수위가 높은 성인용 게임도 많이 갖춰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게임 불법복제가 판을 치는 이유는 관계 당국의 행정력 부재가 꼽힌다. 불법복제 게임 단속은 게임물등급위원회에서 맡고 있지만 적발 이후에 행정조치를 취할 권한이 없다.

 SW는 관련법 개정으로 프로그램심의조정위원회가 어느 정도의 행정권한을 위임받은 반면에 게임위는 이를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경찰이 동행하지 않으면 불법복제 게임을 단속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문화부 측은 “현재 추진 중인 불법 게임머니 단속 신고 포상금제도를 불법복제 게임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불법복제 제로 선언한 테크노마트

 ‘우리는 불법 복제 제품은 안팝니다.’

 지난달 게임기와 게임타이틀을 사기 위해 신도림 테크노마트를 찾은 김모씨(37)는 판매 상점 주인으로부터 뜻하지 않게 저작권 교육을 받았다. 게임 타이틀 복제판을 요구했다가 면박을 당했다. 다른 게임 전문 점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불법 타이틀은 물론 이를 담을 수 있는 장치도 더 이상 판매하지 않는다며 인터넷 등에서 불법으로 내려받을 시 처벌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대표적인 전자 집단 상가인 테크노마트에서는 불법 복제품을 찾기 쉽지 않다. 상인들은 이미 수년전부터 자율 규제 등을 실시해 영화·음악·게임·PC SW 등의 정품사용을 고객에게 권장하고 있다.

 박상후 테크노마트 팀장은 “지난 2005년 강변 테크노마트에 있는 한국SW저작권 협회가 불법복제 SW 근절을 위한 1만인 서명 운동 등을 벌인 바 있고 이후 상인들이 자율적으로 정품판매운동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집단상가는 인터넷몰과 달리 외부로 쉽게 노출돼, 불법 제품을 판매시 쉽게 단속에 걸린다는 점을 상인들이 충분히 이해했다. 테크노마트 사무동에는 각종 벤처 기업들이 입주한 점도 영향을 끼쳤다.

 SW 등을 개발하는 벤처회사와 상인들이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 자리에서 저작원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정품 사용 문화가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테크노마트 모회사인 프라임그룹이 한컴의 대주주라는 점 등도 상가내 정품 판매 인식 확산에 긍정적인 요소가 됐다는 평가다.

◆불법복제 피해의 또 다른 희생양, DVD

 전자상가에서 나오고 있는 불법복제 콘텐츠는 게임뿐 아니라 영화도 심각하다. 용산전자상가는 저작권보호센터(센터장 이경윤) 오프라인 단속팀이 상시 단속을 하는 장소다. 강남·종로와 함께 상권이 크게 형성돼 있는데다 불법 VCD, 비디오 유통이 DVD 시장까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1월 한 달 동안 저작권보호센터 오프라인 단속팀은 14개의 점포에서 총 2008개의 불법복제 DVD를 적발했다. 이 중 한국 영화는 367건, 외화는 1641건을 차지했다. 유통된 불법 DVD를 돈으로 환산하면 5000만원 남짓. 1월이 상대적으로 비수기임을 감안할 때 연간 용산에서만 불법 유통되는 DVD는 7억∼8억원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단속팀원들이 수시로 불법 DVD를 수거·폐기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집중 단속을 하지만 DVD 불법복제 유통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신재호 저작권보호센터 오프라인 단속팀장은 “영화 쪽은 불법 다운로드 시장이 커서 합법시장에선 DVD가 거의 판매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단속팀의 권한이 불법 DVD에 대해서만 수거 및 폐기만 가능하도록 돼 있어 판매자에는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는 것도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힘든 이유다. 단속이 집중되는 기간에는 판매를 중단했다가, 단속이 다른 쪽에 집중되면 다시 판매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9명에 불과한 단속인원도 문제다. 현재 이 인원이 서울 전 지역의 영상·음악·출판 등 각종 불법복제물의 오프라인 단속을 총괄하고 있다. 최근 이뤄진 출판물 단속은 출판협회의 지원을 받았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이마저도 여의치가 않다.

 신재호 팀장은 “용산이 아무리 불법복제물 유통이 많은 지역이라 해도 이곳에만 집중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단속을 강화하라고 하지만 실질적인 인적·제정적 지원 없이 지금과 같이 해서는 불법복제물 유통의 뿌리를 뽑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특별취재팀> 팀장=김순기차장 soonkkim@etnews.co.kr 장동준, 정진영, 이수운, 최순욱, 정진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