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의 맛있는 영화]쌍끌이 시네마

[한정훈의 맛있는 영화]쌍끌이 시네마

 ‘쌍끌이 시네마가 배틀을 만났다.’

 한국 영화계가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는 지적은 엄살이 아닌 듯싶다. 몇 년 전까지 만해도 관객 점유율 60%를 육박하던 한국 영화는 지난해를 지점으로 급감하고 있다. 최근 CJ CGV가 발표한 ‘2008년 3월 국내 영화산업 분석’에 따르면 3월 한 달 동안 한국 영화 점유율은 46.3%(전국기준)로 절반을 밑돌았다. 이는 전월 대비 22.8% 감소한 수치로 이런 흐름은 3년째 지속되고 있다.

 불황은 곧바로 작품 제작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화판에선 이미 ‘한국 영화 호시절은 갔다’는 평가가 공공연히 나돈다. 실제 관련 신호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작품당 100억원에 가까웠던 제작비는 이제 반토막이 아닌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고 한 해 제작되는 영화 편수도 100편에 못 미친다. 한 충무로 제작자는 “지난해 불어닥친 투자 위축과 수익성 저하로 한때 제작비 20억∼30억원대 영화들이 대거 시장에 나오고 있다”며 “물론 ‘저예산’으로 지칭되는 작은 영화들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현재 면면은 사뭇 달라 보인다”고 전했다. 실제로 권상우·송승헌 주연의 ‘숙명’ 등 대작 한두 편을 제외하면 ‘허밍(3월 13일 개봉)’ ‘동거, 동락(3월 27일 개봉)’ ‘경축! 우리사랑(4월 10일 개봉)’과 저예산 한국 영화가 현재 극장가에 걸려 있다.

 영화계 가뭄은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형태의 시각 예술을 만들어냈다. 극장 관객에만 목매는 영화가 아닌 케이블·TV 등 1500만 안방 고객을 동시 겨냥한 이른바 ‘쌍끌이 시네마’가 등장한 것이다. OCN의 TV영화 ‘이브의 유혹’, 청어람의 영화드라마 ‘괴물’이 대표적인 사례. 이런 쌍끌이 시네마는 지난해 불어닥친 ‘자드(케이블 자체제작 드라마)’ 열풍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자체 드라마 제작으로 자신감을 얻은 케이블 업체들이 드라마로 써먹을 수 있는 영화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사 더드림픽쳐스와 온미디어 계열 OCN이 기획한 ‘장감독VS김감독’은 ‘1타 2피’를 노리는 쌍끌이 시네마에다 감독 간 대결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채택한 국내 최초 무비 배틀 프로젝트로 개봉 전부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라이터를 켜라’의 장항준 감독(장 라인)과 ‘최강로맨스’의 김정우(김 라인) 감독은 총 4편의 코믹 영화로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대결을 펼치게 된다. 먼저 1라운드. 오는 18일 장 감독의 ‘전투의 매너(강경준. 서유정 주연)’와 김 감독의 ‘색다른 동거(정시아, 채윤서 출연)’가 맞붙는다. 승자는 한 명이라도 많은 관객을 끌어들인 작품에 돌아갈 예정. 2라운드는 1주일 뒤 케이블에서 준비된다.

 25일 OCN에서 연속 방영되는 장 라인의 ‘음란한 사회(김진수, 문원주 주연)’와 김 라인의 ‘성 발렌타인(이지현, 이용주 주연)’은 시청률로 최종 승자가 가려진다. 만약 일대일 상황이 벌어지면? OCN 측은 3라운드를 계획하고 있다. 오는 5월 9일 밤 11시. 1라운드 승자와 2라운드 승자의 작품을 방송, 1위 감독을 가려낼 방침이다. 이쯤 되면 살아남은 자에 대한 보상이 궁금해진다. 지난 8일 열린 영화 제작 발표회에서 장항준 감독은 “몇 년 전 술자리에서 말한 프로젝트가 현실화돼 처음엔 나도 당황스러웠다”며 “지고 이기는 문제가 아니라 영화와 스크린을 넘나드는 독특한 프로젝트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정훈기자 exist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