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충정로 형제우물길

 골목 귀퉁이에 ‘하숙’ 간판을 내걸고 있는 나무 대문집이 잔웃음을 머금게 한다. 음료수 하나 사지 않는 염치없는 손님에게 대에 대를 잇는다는 동네 한의원 이야기를 허물없이 터놓는 슈퍼 주인 아주머니의 넉살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여느 시골길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곳. 충정로 형제우물길이다.

 충정로 9번 출구로 나와 30m정도 걷다보면 카파 에스프레소라는 작은 커피전문점이 보인다. 이 커피점 골목으로 들어가면 옛 동아일보 사옥, 충정타워 사이에 자리 잡은 형제우물길이 열린다.

 좁은 골목은 외벽에 ‘환영 OO식권’이라는 표지를 붙여놓은 식당들의 행렬로 이어진다. 충정로 3가 뒷골목으로 불리는 이 길은 근처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밥집 골목이다. 직장인들 점심식사가 주가 되다 보니 가격은 4000∼5000원대. 메뉴도 굴국밥, 돈까스, 부대찌개, 추어탕 등 여느 직장가의 그것과 다름없지만 가격 대비 맛에 반해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형제우물길 식당들의 특징은 점심시간이 지난 3시부터 5시까지는 대부분 휴식에 들어간다는 점이다.

 길 중간쯤 이르러 삼거리 슈퍼를 끼고 돌면 한 때 시장점유율 100%를 기록한 102년 전통의 이명래 고약집이 보인다. 10시에 문을 열고 오후 4시면 문을 닫는 이곳은 혹시라도 늦게 고약을 찾는 이들을 위해 삼거리 슈퍼로 문의하라는 쪽지를 남겨놓는 배려도 잊지 않고 있다.

 고약집에서 10m 남짓 떨어진 충정각은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전시장이 함께 있는 대안 문화 공간이다. 지어진 지 족히 100년은 됐음직한 이 공간은 원래 사택이었는데, 작년 현재 주인인 문동수씨가 대안 공간으로 개조했다. 현재 개최 중인 장길수 개인전 ‘스며들고 뒤섞이다’를 포함해 7번의 전시회를 열어 다양한 대안문화를 선보이는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형제우물길 끝 충정타워 맞은 편의 커피 나루는 독특한 외관과 인테리어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연통에 주렁주렁 단 사진과 유리벽에 낙서한 듯 그린 그림, 핸드드립으로 추출한 커피는 나른한 오후에 머물고픈 충동을 안겨 준다. 무엇보다 이 집의 가장 큰 매력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조차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사장님의 따뜻한 마음씨다. 이수운기자 p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