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사태]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퇴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취임 20년 만에 퇴진한다.

 그룹 컨트롤타워였던 전략기획실도 폐지되며 이학수 부회장 등 수뇌부 대부분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이에 따라 삼성은 전자·금융 등 소그룹·계열사별 독자 경영체제로 바뀐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 이기태 부회장 등 사장단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2일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 국제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 사과문과 함께 회장 퇴진을 포함한 10가지 경영 쇄신안을 전격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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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회장은 “아직 갈 길이 멀고 할 일이 많아 아쉬움이 크지만 삼성 회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20년 전 삼성이 초일류 기업으로 인정받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며 “앞으로 삼성이 세계 일류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국민 여러분이 더욱 큰 관심을 가져 달라”고 말했다.

 물러나는 이건희 회장 후임으로는 삼성생명 이수빈 회장이 선임됐으며 임원 2∼3명의 소규모로 업무지원실을 신설하기로 했다.

 이날 발표된 삼성 측 경영 쇄신안에 따르면 먼저 이건희 회장은 대표 회장과 등기이사·문화재단 이사장 등 삼성과 관련한 일체의 직에서 사임 절차를 밟는다. 이는 지난 87년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지 20년 만이다. ‘삼성 그룹 황태자’로 불렸던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도 고객 총괄 책임자(CCO)에서 물러나 해외 현장 경험을 더 쌓는 방향으로 백의종군하기로 했다.

 이날 회견장에서는 이 전무의 구체적인 역할은 언급이 되지 않았지만 구주나 북미 해외 법인 쪽을 맡는 방안이 유력하게 나오고 있다. 그룹을 지휘, 감독했던 전략기획실은 해체하며 이학수 부회장과 전략기획실 산하 전략지원 팀장을 맡고 있는 김인주 사장 등도 삼성 사태가 매듭되는 대로 일체의 직을 사임하고 경영 일선에서 퇴진한다.

 사외이사 선임에 대해서는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삼성과 직무상으로 연관이 있는 인사는 선임하지 않기로 했다. 특검에서 조세 포탈로 문제가 된 4조5000억원의 규모의 차명 계좌는 모두 이건희 회장 실명으로 전환하기로 했으며 누락한 세금 등을 모두 납부한 후 남은 돈을 본인이나 가족보다는 ‘유익한 일’에 쓸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또 삼성 생명·증권·화재 등 금융사에 대해서는 경영 투명성을 더욱 높이고 소문으로 떠돌던 은행업은 진출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삼성은 지주회사 전환은 시간을 두고 검토하기로 했으며 순환출자의 핵심 고리인 삼성카드 보유 에버랜드 주식(25.64%)을 4∼5년 내 매각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삼성은 6월 말까지 전략기획실 해체와 사임 등을 포함한 법적 절차와 실무 준비를 진행해 7월 1일부터 차질 없이 시행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학수 부회장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이번 쇄신안을 골자로 앞으로도 더 고쳐야 할 사항이 있으면 고치겠다”고 말했다.

  강병준기자 bj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