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사태]삼성, 과거 허물 털고 새출발 선언

 삼성그룹 경영 쇄신안의 핵심은 그룹 총수인 이건희 회장의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원래 예상보다 훨씬 강도 높아 산업계에 적지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당초 업계에서는 회장 퇴진은 힘들 것이며 개편 수준에서 전략기획실이 재조정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었다. 삼성이 원래 예상보다 더욱 강도가 높은 파격적인 쇄신안을 내놓음으로써 ‘제3 창업’을 위한 새로운 전환점이자 출발점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건희 회장 퇴진=이 회장은 특검 정국의 총체적인 책임을 지고 삼성과 관련한 일체의 직함에서 사임한다. 이 회장은 선대 이병철 회장이 별세한 후인 87년 회장에 취임해 삼성 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지만 이날 퇴진을 발표하면서 20년 만에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이학수 부회장은 “이 회장 퇴진은 특검 수사 결과와는 상관이 없으며, 특검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인 3월 초에 이미 퇴진 의사를 언급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 이수빈 부회장이 이를 대신해 대외적으로 그룹을 대표하게 된다.

 ◇그룹 전략기획실 해체=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룹 전략기획실은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그룹은 “각사의 독자 경영 역량이 확보됐고 사회적으로도 그룹 경영 체제에 일부 이견이 있는 점을 감안해 전략기획실을 해체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해체되는 전략기획실 대신 사장단 회의 등을 통해 각 계열사 투자 계획 등을 조율하며 사장단 회의를 실무적으로 지원하고 대외적으로 삼성 그룹 창구 역할을 맡는 업무지원실이 사장단 협의회 산하에 설치된다. 기획실은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권력이 집중된만큼 경영권 편법 계승과 비자금 조성 등 그룹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그 중심에 섰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사임=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도 사임한다. 이 전무의 거취는 5월 예정된 삼성전자 인사 발표 때 보직 등 구체적인 내용이 정해질 예정이다.

 이와 관련, 이학수 부회장은 “이 전무는 아직 경영수업을 받고 있을 뿐이며, 이 회장은 이 전무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며 “이 회장은 이 전무가 주주와 임직원,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경영을 승계하게 되면 불행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사외이사도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삼성과 직무상으로 연관이 있는 인사들은 사외이사로 선임하지 않겠다고 그룹 측은 덧붙였다.

 ◇차명계좌는 ‘유익한 일’에=특검 수사 결과 조세 포탈한 것으로 드러난 차명계좌는 이 회장의 실명으로 전환한 후 사회 사업 등에 쓰인다.

 그룹 측은 “차명계좌는 과거 경영권 보호를 위해 명의 신탁한 것으로 이번에 이 회장 실명으로 전환하며 이 회장은 누락된 세금 등을 모두 납부한 후 남는 돈을 사회 사업에 쓰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돈의 사용처를 놓고는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정해지지 않았으며, 이 회장이 생각을 정리하는 대로 집행할 수 있도록 준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은행업 진출 계획 ‘없음’=삼성그룹은 이날 은행 사업에 진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삼성그룹은 “그동안 삼성이 금융업에 진출할 것이라는 의혹이 많았지만 은행업에는 절대 진출할 계획이 없으며, 오직 금융사들의 경영을 더욱 튼튼하게 다져서 일류기업으로 키우는 데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황태선 삼성화재 사장, 배호원 삼성증권 사장은 물의를 일으킨 데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로 했다.

 ◇순환출자 단계적 개선=삼성그룹은 순환출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삼성카드가 보유한 에버랜드 주식을 4∼5년 내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룹은 ‘그룹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지주회사로 전환하거나 순환출자를 해소해야 한다’는 사회 일각의 조언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어려운 일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룹은 또 “현재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데는 20조원 이상이 필요하고, 그룹 전체의 경영권이 위협받는 문제가 있다”며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추진하기는 어려운 사안인만큼 앞으로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강병준기자 bj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