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퇴임 후 전략기획실을 대체할 조직으로 ‘사장단협의회’가 얼마만큼 이건희 회장의 공백을 메울지가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아울러 사장단협의회가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어떤 경영 구도를 가져갈지도 여전히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포스트 이건희’ 이후 삼성전자의 경영진 구도도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사장단 협회의가 전략기획실 기능=그동안 사장단협의회는 일주일에 한 번 매주 수요일 이학수 부회장 주재로 열렸다. 매주 열렸던 사장단 회의는 이학수 부회장, 전략기획실 팀장, 주요 계열사 사장이 참석했으며 참여 인원은 30명 선으로 알려져 있다. 각 계열사 사장이 모두 참석하는 최고 회의 격이지만 말 그대로 계열사 상황을 공유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이 목적이었다. 사안별로 결정권을 가진 형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역할이 사장단 회의로 넘어가면서 그 위상이 한층 높아지고 기능도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투자 결정 등 그룹 차원의 핵심 현안에 대한 실질적인 결정이 모두 이곳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기존 사장단협의회의 변화도 불기피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협의회 아래에 실무를 지원하고 대외적으로 삼성그룹의 창구와 대변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행정 서비스를 전담하는 업무 지원실을 임원 2∼3명의 소규모 조직으로 설치키로 했다.
◇당분간 안정화 주력 전망=전략기획실을 대신할 집단지도체제는 당분간 안정화에 주력할 전망이다. 이건희 회장은 물론이고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 등 핵심 실세들이 한꺼번에 물러나는 상황에서 급격한 인사 교체는 조직을 혼란에 빠뜨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개별 계열사 경영을 그대로 방임할 수도 없다. 계열사 CEO들이 각개 약진하게 되면 그룹 경영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이 때문에 삼성은 계열사별 자율 경영을 유도하면서 당분간 금융·전자 등 소그룹 경영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에게 이건희 회장의 역할을 맡긴 것은 과도적이지만 그룹을 원로급 경영진에게 맡겨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오는 5월로 예정된 삼성 사장단 인사도 현행 체제를 유지하는 선에서 최소화할 가능성이 현재로선 높다. 삼성전자의 대규모 시설 투자와 같은 큰 결정은 사장단협의회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같은 핵심 경영진의 역할이 되레 커질 것이라는 관측으로 이어진다.
◇포스트 실세는=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이 6월까지 밑그림을 그리고 경영에서 물러난 후 공백을 메우는 것도 삼성의 과제다. 전략기획실을 폐지하면 현실적으로 이들을 대신할 사람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한 가지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사장단협의회에서 윤종용 부회장의 역할이다. 문제는 협의회를 주재할 이수빈 차기 회장이 그룹의 주력인 삼성전자를 잘 모른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윤종용 부회장이 실질적으로 회의를 주도하는 모양새가 될 것이 유력하다. 게다가 윤 부회장은 이번 특검에서도 수사 대상 전면에 오르지 않아 그룹 내 입지도 확고한 편이다. 안정화 차원에서 현업에서 물러난 이윤우 부회장과 이기태 부회장에게 새 역할이 주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전자 총괄 사장들이나 계열사 사장들의 역할이나 위상 강화도 예상된다.
각 계열사의 기획·재무 라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최도석 삼성전자 경영지원총괄 사장과 같은 계열사 핵심 인물들의 역할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들은 사장단협의회와 같은 공식 협의체가 아니더라도 긴밀한 협의를 거쳐 전략기획 기능을 대신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이 퇴임 전까지 마무리하겠다는 잔무도 이러한 체계 구축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해외 신흥시장 관리를 맡게 될 이재용 전무를 누가 측근에서 보좌할 것인지도 벌써부터 관심사다. 이들은 이 전무가 경영 수업을 마친 뒤 경영 일선에 복귀할 때 기존 인물을 대신할 포스트 실세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서한기자 hseo@ 강병준기자 bj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