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23일 예정됐던 삼성 그룹 사장단 회의를 열지 않았다. 삼성 사장단 회의는 매주 이학수 부회장 주재로 수요일 오전 교양수업과 그룹 주요 현안을 논의해 왔다. 그룹 현안에 대해 간단한 브리핑과 의견도 공유했다. 사장단 회의는 삼성 그룹의 ‘별 중의 별’들이 참석하는 회의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정기적으로 진행돼 왔다. 삼성그룹 측은 “어제 긴급 사장단 회의를 했기 때문에 오늘은 특별한 회의가 없다”고 말했다. 또 “6월 말까지 협의 기구인 사장단협의회를 구성하기 전까지 큰 일정 변화가 없으면 정기적으로 회의는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측의 설명에도 일부에서는 이 회장 퇴진과 전략기획실 폐지 등 삼성의 중심 축이 흔들리면서 사장단도 방향타를 잃은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삼성은 그동안 굵직한 현안을 이건희 회장과 전략기획실에서 처리해 왔다. 가령 삼성전자 생산라인을 위한 20여조원의 달하는 투자는 대부분 전략기획실이 직접 지휘했다. 2004년 성사된 삼성과 소니의 8세대 LCD 합작 건은 이 회장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대규모 투자 건은 모두 전문 경영인이 맡게 된다. 당장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 일본 소니 LCD 패널 공장 합작 건, 휴대폰 동남아시아 확충 건 등을 매듭지어야 한다. 그룹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 계열사 사업 중복, 신성장 분야 진출 등 굵직한 결정과 관련해 약간의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오히려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주면서 계열사 주도의 전문 경영인 체제를 강화하는 순기능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퇴진 후 첫날. 이 회장 퇴임 후 숱한 시나리오로 시끌벅적하지만 정작 삼성 내부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분한 분위기다. 오히려 안팎으로 분주했던 특검 당시 상황이 무색할 정도로 ‘평정’을 유지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때문에 이 회장 퇴임이 삼성 전체 경영에 ‘메가톤급’ 태풍이라는 분석이 나왔지만 결국 ‘미풍’에 그치면서 특검으로 주춤했던 경영 공백이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삼성그룹 본사와 삼성전자·삼성SDS·삼성전기 등 대부분의 계열사는 23일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냈다. 회장 퇴임 직후지만 그룹 차원의 별다른 지침도 없었으며 사업 보고 회의와 같은 의례적인 업무의 연속이었다. 직원들도 어제와 달리 별다른 동요 없이 맡은 업무에 매진했다.
하루가 지난 23일 직원들은 오히려 이 회장 퇴진 후 회사 앞날보다는 5월 중순에 있을 인사와 성과급 등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 퇴임을 바라보는 시각은 사장단, 임원 그리고 일반 직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며 “좀 착잡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회장 자체는 직원들하고 너무 거리가 있는 인물이고 그것보다는 인사 등 퇴임 후 예정된 현안에 더 관심이 가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나”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회장이 물러난다고 해서 마음가짐이 크게 달라질 것도 없고 평상시대로 회사 업무에 충실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외부에서는 ‘오너 경영’에 익숙했던 삼성이 계열사 주도의 ‘전문 경영인’ 체제에 정착할 수 있을지를 놓고 여전히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지금부터 6월 말까지, 즉 7월 ‘뉴 삼성’ 경영 체제가 출범하기까지 당분간 경영 혼선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강병준기자 bjkang@